[이슈추적-존엄한 죽음] (中)‘조력존엄사’ 논쟁, ‘사회적 타살’인가 ‘최후의 권리’인가

  • 등록 2025.04.02 10: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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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80% 찬성하지만 의료계·종교계 반대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극심한 고통 외면”
‘현대판 고려장’ ‘사회적 타살’ 우려 커
헌법의 ‘자기결정권’과 형법의 ‘자살방조죄’ 충돌
국회 계류 중...헌법소원 결과가 결정적일 듯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대한민국이 2025년 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빠른 속도로 진입한 이후,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은 개인의 고민을 넘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웰 다잉’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나한테, 우리 가정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생각하고 경험하게 될 사안으로 다가왔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존엄한 삶’이 전제될 때 완성된다. 죽음의 질이 곧 삶의 질인 시대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3편에 걸쳐 ‘웰 다잉’의 문제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최근에는 연명의료 중단을 넘어,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죽음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말기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는 2022년 첫 발의 이후 현재 국회에서 치열한 공방의 중심에 서있다. 그 사이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조력존엄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은 해마다 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이다. 어느 조사든 대체로 성인 10명 중 8명이 조력존엄사 입법에 찬성하고 있다.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수년간 어떤 질병으로든 극도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의 고통은 외면받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와 종교계의 반대는 완강하다. 의협은 “의사의 본분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며 조력사가 허용될 경우 의료인에게 가해질 윤리적 부담과 생명 경시 풍조를 우려한다. 기독교계 등 종교계 역시 “죽음의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다”며 강력한 반대를 굽히지 않는다.

 

연명치료중단은 뇌사 등 임종기 상태에 있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등을 제거해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지만(소극적 존엄사), 조력존엄사(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직접 복용하는 것으로 임종기와는 무관할 수 있다. 환자가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투병 상태일 때 시행하는 것으로 현재는 불법이다.

 

 

◇의사조력사, 문제점과 우려

 

전문가들과 국가가 우려하는 지점은 ‘경제적 이유로 인한 죽음의 선택’이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기록 중인 한국에서, 돌봄 비용을 감당하지 힘든 노인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력사를 선택하거나 주변 환경에 의해 죽음을 압박 받는 ‘현대판 고려장’ 또는 ‘사회적 타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처음에는 말기 암 환자나 극심한 고통 등 엄격한 기준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용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체적 질병을 넘어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이나 경제적 빈곤, 단순한 노환을 겪는 사람들에게까지 조력사가 허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또는 가정 안에서 “병들고 쓸모없어지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은 생존에 대해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환자를 살리는 존재가 아닌, 죽음을 돕는 존재가 되었을 때 환자와의 신뢰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또 조력사 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의사는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쉬워지면, 고통을 줄이며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하도록 돕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발전이 저해될 수도 있다.

 

◇해외 경우는?

 

‘의사조력사’에서 한 단계 더 나간 방식은 ‘적극적 안락사’다. 환자 스스로 약물을 주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의사가 직접 치사량의 약물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등이 허가하고 있다.

 

현재로선 ‘의사조력사’ 허용이 일반적 흐름이다. 허용하는 나라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일부 주) 등으로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직접 복용/투여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현재 10여 개 주에서 말기 환자에 한해 의사조력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현재 논의와 전망

 

2022년부터 국회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돼 논의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공청회 등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더 필요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헌법소원이다. “말기 암 환자 등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자기결정권)를 국가가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인가?”에 대한 법리적 다툼이다. 2023년부터 헌법재판소에서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었다. 양측의 서면 공방과 전문가 의견 청취가 이어지는 집중 심리 단계에 있다.

 

과거에는 ‘살리는 것’만이 정의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존엄하게 보낼 것인가’가 법의 영역으로 들어온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만약 ‘입법 부작위(법을 만들지 않은 것)’나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국회는 의무적으로 관련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존엄사·의사조력사 논쟁은 헌법과 형법이 충돌하는 전형적인 주제다. 헌법은 ‘존엄한 죽음’을 뒷받침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지만, 형법은 여전히 조력자살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으로, 여기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도출된다.

 

판례가 있다. 폐암 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 할머니 사건이다.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했다. 헌법 제10조의 자기 결정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의 여파로 ‘연명의료결정법’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판결이 ‘능동적’ 행위인 의사조력사까지는 포함하지는 않는다는 게 법학자들의 다수 해석이다. ‘삶을 연장하는 행위를 거부할 권리’이지, 의사의 도움으로 직접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적극적 조력사망까지 명시적으로 승인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의사가 말기 환자에게 치사량 약물을 처방·제공하고, 환자가 이를 복용해 사망하게 하는 것은 자살방조죄(형법 252조 2항)에 해당한다. 자살도구 제공, 독약 제조, 자살방법 조언·격려, 자살 장소로 운반 등은 모두 자살방조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형법은 자살은 범죄가 아니지만 자살에 관여하는 행위는 독립 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무의미한 치료를 멈추는 단계’에서 ‘본인의 의지로 죽음의 시기를 선택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갈등과 법적 판단의 한복판에 서있다.

 

헌법소원 결과와 국회에 발의된 조력존엄사법 통과 여부는 한국 사회의 임종 문화를 송두리째 바꿀 최대 변수다. 멀지는 않았다. 향후 수년 내에 법적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기봉 기자 healtheco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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