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이슈] '자살은 사회적 재난' ...예방을 위한 전문가 진단

  • 등록 2025.09.11 12: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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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
인구 10만 명당 29.1명...OECD 평균 2.7배
"정신건강 검진, 신체검사만큼 자주 해야"
"경제적 위기가 곧 삶의 위기“
"사후 관리의 골든타임, 24시간 이내 개입"
급격한 사회 변화와 유대감의 붕괴가 원인

한국헬스경제신문 김혁 기자 |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각 나라는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세계 1위 자살국가인 대한민국의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OECD 평균(약 10.7명)의 2.7배에 달하며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자살 예방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자살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전년(1만 3978명)보다 4.4% 증가해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1만 4588명(잠정치)이 자살로 숨졌다. 인구 10만명당 28.3명, 하루 39.9명, 1시간당 1.6명꼴이다.

 

◇한국에는 유독 왜 자살이 많을까.

 

한국의 자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차원을 넘어, 급격한 사회 변화가 맞물린 복합적인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은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찾는다.

 

- 급격한 사회 변화와 유대감의 붕괴

 

과거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공동체 의식과 대가족 제도가 빠르게 해체되면서, 개인이 겪는 고립감이 심화되었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자녀 세대와의 분리 및 부양 체계의 약화로 인해 고독사와 우울증에 취약해진 상태다. 실제로 80세 이상 고령층의 자살률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 치열한 경쟁과 서열화된 사회

 

한국은 교육, 취업, 주거 등 삶 전반에 걸쳐 타인과 비교하고 성취를 압박받는 문화가 강하다. 청년층은 취업난과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박탈감'이 강하다.

 

통계에 따르면 4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 아니라 ‘자살’이다. 이는 실직, 채무, 이혼 등 경제적·가정적 위기가 몰리는 시기에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경제적 불평등과 노인 빈곤

 

OECD 국가 중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독보적인 1위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와 질병,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심리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낙인

 

마음의 병을 ‘의지의 문제’나 ‘부끄러운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많은 자살 사망자가 사전에 우울증 증상을 보이지만,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적 불이익을 우려해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자살 예방 대책-자살은 '사회적 재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자살을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하고 전면적인 정책 패러다임 변화와 특단의 범부처 대책 기구 발족을 지시했다.

 

국회도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자살예방정책 강화를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자살예방포럼은 10일 자살예방기금 설치 근거 마련을 위한 법 개정안 4건과 ‘자살 없는 대한민국을 위한 실천결의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주요 개정안과 결의안은 각각 의원 123명과 114명 서명을 받았다.

 

법안은 매해 편성되던 예산안에 의존하지 않고 기금을 통해 자살예방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결의안에는 자살예방을 국가 정책 우선순위로 두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0.05% 이상 예산을 확보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기준 1조2784억 원 규모다.

 

예산안 중 증액 규모가 가장 큰 사업은 자살예방센터 인력 확충이다. 복지부는 센터당 인력을 기존 2.6명에서 5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자살 유가족 서비스를 기존 12개 시도에서 17개 시도로 확대하고, 자살 시도자 치료비 지원에 소득 기준을 폐지하는 방안도 예산안에 포함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제9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 역시 12일에 열릴 예정이다. 자살예방정책 컨트롤타워인 자살예방정책위원회는 올해 들어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서는 복지부가 준비한 2025년 국가자살예방전략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0일 서울 더플라자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2025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올해 14회를 맞는 이번 기념식은 ‘모두가 모두를 지키는 사회, 생명 보호가 일상이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비전과 ‘자살 생각 하나요? 마음구조 109’를 주제로 했다.

 

지난 한 해 자살예방과 생명존중에 공헌한 개인 및 기관에게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100점이 수여됐다.

 

◇전문가 진단-한국형 자살 예방 대책은?

 

한국의 자살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심리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는 2034년까지 자살률을 17.0명(인구 10만 명당) 이하로 낮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현장의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이고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대책은 정신건강 관리의 일상화다. 현재 10년 주기인 국가 정신건강검진 체계를 신체검사와 동일한 2년 주기로 단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울증은 심리적 감기지만, 방치하면 치명적인 질환이 된다고 한다. 조기에 조현병, 조울증 등을 발견할 수 있는 검진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진 결과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경우 즉각 전문 의료기관으로 연계되는 ‘심리적 자동 연계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살 원인 중 정신적 문제(약 40%)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경제적 생활고(약 24%)다.

 

전문가들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자살예방센터 간의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 파산이나 채무 조정을 신청하는 고위험군을 선제적으로 찾아내야 한다고 제언한다. 돈 문제로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심리 상담까지 동시에 제안할 수 있는 통합 거버넌스가 절실하다는 의견도 많다.

 

또 응급실 기반의 사후 관리를 생존의 핵심으로 꼽는다. 자살 시도자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 확률은 일반인의 20~3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경찰·소방·병원이 위기 상황을 인지하면, 지자체 자살예방팀이 24시간 이내에 연락하거나 방문하는 체계를 전국적으로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또 현재 중위소득 120% 이하에게만 지원되는 자살 시도자 치료비 지원을 소득에 관계없이 전면 확대하여 치료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밖에 1인 가구 급증과 공동체 붕괴가 자살의 숨은 이유라는 분석이 강한 만큼 전문가들은 주변의 징후를 알아차리는 ‘생명지킴이(Gatekeeper) 양성을 강조한다. 동네 약국, 편의점, 종교 시설 등을 거점으로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민관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혁 기자 kh920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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