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비동의 강간죄’라는 게 있다. 위협이나 폭행에 의한 성폭행만이 강간이 아니라 상대가 명백하게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행위도 강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을 시행하는 나라들은 서구를 중심으로 많다. 국내에서는 수년 전부터 찬반논란만 가열되고 있고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프랑스 상원이 29일 본회의에서 찬성 327표 대 반대 0표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 4월 하원에서도 압도적 다수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간 프랑스 형법은 ‘폭력과 강요, 위협, 기습 등으로 타인에게 행한 모든 종류의 성적 삽입 행위’만을 강간으로 정의하고 동의 여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여성단체들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처럼 동의 여부를 강간죄 성립 요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개정안에서 ‘동의’는 자유롭고 구체적이며, 사전에 이뤄지고, 언제든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 상대방이 침묵하거나 반응이 없었다 해도 이를 동의가 있었다고 간주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법이 시행되긴 위해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될 것이 확실하다.
법안이 승인되면 프랑스는 영국, 독일, 스웨덴, 스페인, 벨기에 등 다른 10여 개 유럽 국가와 동일한 기준을 따르게 된다.
프랑스에서 ‘비동의 강간죄’가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해 프랑스 전역을 달군 희대의 성폭행 사주 사건인 ‘지젤 펠리코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 사는 지젤 펠리코(72)의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73)는 2011년부터 약 10년 동안 지젤의 음식에 약물을 타서 의식을 잃게 한 뒤 온라인 채팅으로 남성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성폭행하도록 사주하고 불법 촬영을 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1심 법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도미니크의 범행은 4년여 전 그가 슈퍼마켓에서 휴대전화로 여성들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붙잡히면서 드러났다. 그 후 이 부부는 이혼했다.
통상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신원은 비공개되지만 지젤은 달랐다. 당당하게 자신의 신원을 드러냈다. 그뿐 아니라 검찰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며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음에도 모든 재판을 공개해줄 것을 요청해 ‘용기의 아이콘’으로 단번에 떠올랐다.
당당하게 증언에 나선 지젤은 법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제게 용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용기가 아닌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이라며 “모든 피해 여성이 ‘펠리코도 해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치심은 가해자들의 몫”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프랑스 여성들은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정을 찾아 지젤에 대한 응원과 연대를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전역에서는 지젤 지지를 표명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범행에 가담한 남성 49명에게는 징역 3~15년이 선고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가해자 유죄 판결 뒤 “지젤의 품위와 용기는 프랑스와 전 세계에 감동과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젤에게 최고 등급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중 슈발리에((Chevalier·기사)를 서훈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젤을 ‘2025년 올해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국내에서는 22대 국회에서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지난 3월 비동의강간죄 신설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으나, 법안 발의 요건(국회의원 10인의 서명)을 충족시키지 못해 지연되고 있다.
비동의강간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동의 강간죄가 도입되면 이를 악용하는 여성들 때문에 무고한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또 동의 여부에 대한 증거 수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