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84%가 연명치료 거부했지만...실제 중단은 17%뿐

  • 등록 2025.12.18 21: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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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의향과 의료현실 괴리 커
환자는 ‘임종기’ 판정 받아야...임종 시점 예측 어려워
실제 연명의료 중단 40%는 사망 1주일 전에나 결정돼
중소병원에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부재...결정 못해
“연명의료사전의향서 항목별로 ‘개인화’해야”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건수 기자 |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연명의료사전의향서'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희망은 현실에서 그대로 이뤄질까.

 

본인의 의사와 의료 현장의 괴리는 상당히 큰 것으로 드러났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싶어도 의료현장에서는 환자 희망이 실현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파고들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의 84.1%는 연명의료 거부 의향을 밝혔다. 그러나 실제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불과했다. 오히려 연명의료를 받는 환자 수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6.4%씩이나 증가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불필요한 고통과 막대한 경제적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서의 제도적·구조적 제약과 까다로운 절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현행법상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서는 주치의와 다른 한 명의 의사가 ‘임종기(회생 불가능하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 판정을 내려야 하는데, 뇌사 상태나 암 이외의 질환은 임종 시점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장기 입원 중인 뇌졸중 환자 같은 경우가 그렇다.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임종 1개월 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내려진 사례의 약 40%는 사망하기 불과 1주일 전이었다. 그사이 환자는 평균 6.8개의 고통스런 연명의료 시술을 감내해야 했다.

 

 

 

 

또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병원 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하도록 돼있는데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중소·요양병원은 그런 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보고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처럼 단순히 ‘중단 여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특정 항목별로 환자가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개인화’된 서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임종기'로 한정된 연명의료 중단 시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보건소나 공단 지사를 직접 방문해야만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동네 의원이나 온라인, 모바일 앱을 통해서도 할 수 있게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연명의료 시술 비율이 현재의 70% 수준에서 15%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2070년 기준 약 13조3000억 원의 건강보험 재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를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의료기관 확충과 돌봄 서비스 등 환자가 실제 필요한 분야에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지속은 환자에게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안긴다. 연구진이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에 따르면, 연명의료 환자가 겪는 평균 고통은 대상포진 등 단일 질환에서 겪는 최대 통증의 약 3.5배에 달했다. 특히 고통지수 상위 20% 환자의 경우 그 강도가 12.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생애 말기 의료비’(본인부담금)는 2013년 547만 원에서 2023년 1088만 원으로 10년 새 약 2배나 급증했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2693만 원)의 약 40%에 달해 저소득층은 감당하기 어렵다.

 

가족들의 간병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연명의료를 지속한 가족의 49%는 간병인을 고용한 적이 있으며, 월평균 224만 원을 지출했다. 가족이 직접 간병하기 위해 일자리를 중단한 경우도 46.5%에 달했고, 이로 인한 소득 감소액은 월평균 327만 원으로 집계됐다.

 

연구에 참여한 이인로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인구노동연구실 차장은 “연명의료 제도 개선의 목표는 연명의료 자체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미리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그런 것에 대한 자기결정이 마지막까지 존중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건수 기자 healtheco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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