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최근 한국 사회에서 ‘두경부암’이 무서운 기세로 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고령의 애연가나 애주가에게 드물게 발생하는 희귀암으로 분류됐으나, 최근에는 40~50대 비교적 젊은 남성층에서도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주요암이 되었다. 특히 여성의 자궁경부암 원인으로만 알려졌던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두경부암 급증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밝혀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HPV가 성(性) 매개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HPV(Human Papilloma Virus)는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구강성교 등을 통해 목구멍 깊숙이 숨어 있다가 10~20년 뒤 암세포로 발현한다. 특히 남성에게 더욱 그렇다. 세 차례에 걸쳐 두경부암의 발생 원인과 예방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두경부암은 아직은 일반에겐 낯선 이름이다. 뇌와 눈을 제외하고 얼굴에서 목에 이르는 영역에 발생하는 모든 암을 통칭한다. 우리가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말을 하는 데 필수적인 기관들이 밀집된 곳이다.
한자로는 ‘頭頸部’로 쓰는데 頭는 ‘머리’, 頸은 ‘목’을 뜻한다. 즉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머리와 목 부위’라는 뜻이다.
두경부암은 발생 부위에 따라 여러 암으로 나뉜다.
‘구강암’은 혀(설암), 잇몸, 입천장, 볼 점막 등에 생기는 암이다. ‘인두암’은 목구멍 안쪽인 인두에 생기는 암으로 비인두암, 구인두암, 하인두암으로 구분된다. ‘후두암’은 목소리를 내는 성대 부근에 생기는 암이다. 이밖에 침샘암, 비강 및 부비동암 등이 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두경부암
두경부암은 2010년 연간 발생 건수가 불과 4,143건이었다. 2019년에는 5,613건으로 늘어났다. 최근 10년 새 약 42%의 폭발적인 증가율을 기록했다.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약 3배 가량 많지만, 최근에는 여성 환자의 증가세도 두드러지고 있다.
두경부암 중 구강암 발생은 2002년 약 800명에서 2020년 1,776명으로 20년 사이 2배 이상 폭증했다. 구인두암(편도암 포함)은 1999년 136명에서 2020년 618명으로 20년 사이 450%가 증가했다. 후두암만이 2010년 1183명에서 2019년 1222명으로 정체 수준인데 흡연율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두경부암 연간 발생 환자 수는 구강암이 약 1,500~2,000명,
인두암(편도·구인두 포함)이 약 2,000~3,000명, 후두암이 약 1,000~1,500명, 침샘암이 약 500~800명, 비인두암 등 기타 암이 약 300~600명이다.
전체적으로 연간 약 5,000~ 8,000명 정도 새로 발생한다. 이는 전체 암 환자 중 약 2~3% 수준으로 아직은 비교적 드문 암이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두경부암 전체 환자는 약 2만~4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두경부암이 급증한 이유는 HPV 때문이라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과거엔 술·담배에 의해 주로 발병해 60~70대 고령층에 집중되었으나, 최근에는 성생활이 활발한 40~50대 젊은 중년 남성 사이에 빠르게 늘고 있다.
목구멍 안쪽(인두)과 입속(구강)에 생기는 암이 전체 두경부암의 70%를 차지한다. 2000년대 후반 구인두암 환자의 HPV 양성률은 30%대에 불과했다. 2020년 조사 결과에서는 80%에 육박할 정도로 압도적인 원인이 되었다. 의학계는 그 이유로 성생활 패턴의 변화, 특히 구강성교(오럴섹스)를 지목한다.
◇HPV는 도대체 무슨 바이러스?
HPV는 성매개 감염병(STI) 범주에 속한다.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의 약자로, 성적 접촉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등에 의한 감염을 말한다.
과거에는 ‘성병’(STD,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증상이 없는 감염 상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인 STI라는 용어를 쓰는 추세다.
우리말로는 어렵지만 ‘인유두종(人乳頭腫)’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사람에게 생기는 젖꼭지(乳頭) 모양의 종양’이라는 뜻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피부나 점막 위로 오톨도톨하게 솟아오르는 사마귀나 종양이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젖꼭지 돌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로는 ‘Papilloma’다. 젖꼭지를 뜻하는 라틴어 ‘papilla’에서 왔다. 의학 용어에서 뒤에 ‘-oma’가 붙으면 ‘종양’(tumor)이나 ‘혹’을 의미한다.
HPV는 보통은 신체 면역체계에 의해 2~3년 내 저절로 없어지거나 단순한 사마귀 정도를 만들고 사라지지만, 고위험군 형태인 경우 세포 유전자를 변형시켜 자궁경부암이나 두경부암이라는 치명적인 악성 종양으로 발전시킨다.
HPV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암은 자궁경부암이다. 약 99%에서 HPV 감염이 발견된다. 이밖에도 여성 생식기 외측에 발생하는 질암 및 외음부암, 항문암 역시 높은 비율로 HPV가 관여한다. 남성 생식기에 발생하는 드문 음경암도 HPV 감염이 주요 위험 인자 중 하나다.
코 안에 종양이 자라는 ‘역전성 유두종’도 HPV에 의한 것이 많다. 10% 정도 악성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HPV는 현재까지 확인된 종류만 200여 종이 넘을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의학계에서는 암 발생 위험도에 따라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고위험군 바이러스는 지속적으로 감염될 경우 세포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암을 일으킨다.
가장 위험한 게 HPV 16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두경부암 원인의 약 90%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다. 자궁경부암에서도 약 50~60%의 원인이 된다. 전염력이 강하고 암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다른 형보다 빠르다.
16형은 입속이나 목구멍(인두) 점막 세포에 아주 잘 달라붙고 깊숙이 침투한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속이는 능력이 탁월해 몸속에 10~20년씩 장기 체류하며 암세포를 키운다.
여성은 자궁경부암 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이 가능하지만, 남성은 구강 내 16형 감염을 정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준화된 선별 검사법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마땅한 검진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일부러 검사하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비뇨의학과에선 성기나 항문 주위의 피부, 요도 입구 등을 브러쉬로 긁어 세포를 채취한 뒤 DNA 검사를 진행한다. 목구멍 깊숙한 곳(편도, 혀 뿌리)은 내시경 없이는 들여다보기 힘들고, 세포를 채취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발견했을 때는 이미 3기나 4기인 경우가 많아 성생활을 삼가거나 예방 백신이 유일한 선제 방어 수단이 된다.
다음으로 위험한 형태는 HPV 18형인데 16형과 함께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약 20%)이다.
암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외관상 고통과 전염성이 강한 질환을 만드는 건 저위험군인 HPV 6형과 11형이다. 생식기 사마귀(곤지름) 원인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재발이 잦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