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유재민 기자ㅣ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14년 만에 대전환을 맞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28일 발표한 ‘약가 제도 개편안’은 복제약값을 내려 건보 재정을 안정시키고 제약업체가 신약 개발에 투자토록 유도하는 것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생존 위기를 호소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국내 제약업계가 복제약 생산 위주의 안이한 영업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개편안은 3월 말에 확정돼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시행된다. 현행 약가 구조의 문제와 개편 내용과 목적, 제약업계의 장래 등에 대해 3회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세 가지다. △제네릭(복제약) 가격 인하, △신약 및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 단축, △필수약 공급 강화다. 이번 개편안은 국내 제약업계의 앞날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큰 변화는 제네릭 약가의 대폭 인하다. 오리지널 대비 약 53%에서 40%대 초반까지 낮춘다는 방침이다.
두 번째로는 신약,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가 국내에 빨리 도입될 수 있도록 급여 등재 절차를 240일 이상에서 100일 내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도입하려는 ‘약가 유연계약제’는 의약품의 표시 가격과 실제 가격을 달리하는 이중 가격제다. 외부에 표시되는 신약 가격은 해외 주요국과 비슷하게 고시하되, 건보공단과 제약사는 실제 가격을 기반으로 별도 계약을 체결해 건보 등재 절차를 밟는 식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의약품의 이중 가격제가 일반적인 편이다.
현재 국내 약가가 해외에 비해 낮다 보니 일부 다국적제약사는 한국 시장에 신약을 출시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글로벌 신약의 ‘코리안 패싱’이다.
세 번째로 필수약 공급 강화 부분은 해열제·항생제·수액제 등 필수의약품의 품절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생산원가를 현실화하고 안정적 생산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재정비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 개편안은 단순히 ‘약가를 내리고 올리는 정책’이 아니다. 약제비 구조·제약산업 체질·필수약 공급망까지 전반을 수정하는 전면적 재설계라고 볼 수 있다.
약가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질문은 “한국의 복제약값이 너무 비싸다”라는 것이다. 한국의 약가 구조는 혁신 신약의 경우는 선진국보다 가격이 낮은 경우가 많다. 정부가 보험 등재 과정에서 가격 협상을 강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반면 제네릭 의약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독특한 구조다. 이는 국내 제약 시장이 복제약 중심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2024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복제약 가격은 미국의 1.9배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값보다는 2.17배나 높다. 똑같은 성분의 약을 우리 국민만 유독 두 배 넘는 비용을 지불하며 먹고 있는 셈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국민의 보험료 부담으로 직결된다. 한국 국민의료비의 약제비 비중은 20.5%로 OECD 평균인 14.4%를 크게 웃돌고 있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오리지널 대비 53.55%로 정해진 제네릭 상한가를 40%대 초반으로 대폭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또 복제약 난립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11번째 등재 복제약부터는 기존보다 더 낮은 약가를 부여하기로 했다.
정부는 제네릭 중심의 저부가가치 시장 구조를 깨고, 여기서 절감된 건보 재정을 고가 혁신 신약과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에 재투자하겠다는 생각이다. 제네릭 약가를 40%대 수준으로 낮추면 연간 2500억 원, 4년간 1조 원의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은 “제약사가 복제약 판매에만 안주하지 말고 R&D(연구개발)에 투자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춰라”는 채찍과 당근 전략이다.
복제약 가격의 판매 수익이 높다 보니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연구 개발에 애쓰기보다 이미 검증된 복제약을 하나라도 더 많이 찍어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
병원에서 처방받는 고지혈증 약이나 혈압약 중에는 이름만 다를 뿐 성분과 효능이 똑같은 약들이 수십 가지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에 달한다. 혈압약인 암로디핀과 발사르탄 복합제는 122개의 복제약이 난립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149개의 복제약이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록돼 있다. 선진국들이 보통 한 성분당 10개 내외의 복제약이 경쟁하는 것과 비교하면 비상식적으로 많은 숫자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약이 쏟아져 나오지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값이 법으로 정해진 상한가 근처에서 비슷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가격을 낮춰 경쟁하는 대신 병원에 자기네 약을 써달라고 권하는 마케팅에만 집중한다. 영업 대행사라고 불리는 CSO(Contract Sales Organization)에 약값의 40%에서 60%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를 주면서까지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한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급여 의약품의 73.7%가 보험 가격의 40% 이상을 영업 수수료로 지출했다. 높은 약값으로 인한 수익이 신약 개발비에 투자되지 않고 영업 전쟁을 위한 자금으로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약가 인하를 통해 아낀 재원을 치료비가 수억 원에 달해 환자들이 엄두를 못 내는 희귀질환 치료제나 중증질환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데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복제약 가격 인하에 제약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제약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을 감안해 48.2%가 인하의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는 정부 개편안이 강행될 경우 연구개발 투자 위축과 대량 해고는 물론 필수의약품의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고 ‘위협’하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이런 업계의 호소를 바라보는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업계가 내세우는 생존 논리 속에 정작 약의 주인인 국민의 고통과 건강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약 산업은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이다. 그러나 그 열매가 기업만 배를 채우고 국민의 의료비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제약 산업의 존재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약가제도란 무엇인가
약가제도는 의약품 가격을 건강보험 당국이 관리하는 정책을 말한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은 대부분 의약품 가격을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의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구조다. 유럽과 일본도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은 시장 중심 구조다.
그 과정은 ‘신약 개발 또는 의약품 도입-건강보험 급여 등재 신청-임상 효과 평가-정부와 제약사 가격 협상-보험 적용 및 약가 결정’ 순서로 진행된다. 즉 의약품이 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될 때 정부가 가격을 정하는 제도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가입자가 낸 건강보험료 재정에서 약값이 상당 부분 지급되는 만큼 정부가 가입자를 대표해 협상하는 셈이다.
고가 신약 증가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는 약품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국가들이 약가 협상이나 가격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도 일부 고가 의약품은 가격 협상을 도입했다.
의약품 가격 관리와 혁신 장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세계 보건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