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김혁 기자 |
플라스틱은 인류의 삶을 바꾼 혁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장 ‘은밀한 위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최근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환경을 넘어 인체 건강까지 파고들며 새로운 공중보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바다, 토양, 공기뿐 아니라 식수와 음식, 심지어 인간의 혈액과 장기에서도 검출되면서 ‘플라스틱 시대의 역습’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어디서 시작됐나…끝없이 쪼개지는 플라스틱
최근 환경보호와 건강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이다.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 국제적으로 통일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지름 5㎜ 이하부터 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이하의 나노플라스틱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너무 작아서 하수 처리 시설에서 걸러지지 않고 강이나 바다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세안제나 화장품 등에 사용되던 ‘1차 미세플라스틱’, 다른 하나는 폐기된 플라스틱이 햇빛과 마찰, 풍화 작용을 거쳐 잘게 부서진 ‘2차 미세플라스틱’이다.
특히 문제는 후자다. 페트병, 비닐봉지, 타이어 마모 입자, 합성섬유 의류에서 떨어져 나온 섬유 조각 등이 환경 속에서 끝없이 분해되며 미세화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입자는 바람을 타고 이동하거나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인간은 물과 음식, 호흡을 통해 이를 다시 섭취하게 되는 ‘순환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인체까지 침투…건강 위협 현실화
과거에는 미세플라스틱이 대부분 체외로 배출된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는 이를 뒤집고 있다. 인체 내 축적 가능성이 점차 확인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입자들이 단순한 ‘이물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세플라스틱은 표면에 각종 유해 화학물질을 흡착하거나, 제조 과정에서 첨가된 첨가제가 함께 체내로 들어온다. 대표적으로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비스페놀 A, 프탈레이트 계열 물질 등이 있다.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건강 문제로는 염증 반응 및 면역 이상, 내분비계 교란으로 인한 생식 건강 및 대사질환 영향, 심혈관·호흡기 질환 위험 증가, 발암 가능성 등이다.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 노년층 등 취약계층에서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미세플라스틱이 사람에게 위험한 이유는 ‘흡착 성질’ 때문이다.
플랑크톤이 미세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섭취하고, 이를 작은 물고기가, 다시 큰 물고기가 먹으면서 최종적으로 인간의 식탁까지 올라온다. 이를 ‘생물 농축’이라고 한다.
또 플라스틱 자체가 가진 화학 성분뿐만 아니라, 바닷속의 유해 물질(중금속 등)을 표면에 흡착해 운반하는 ‘셔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혈액, 폐 조직, 심지어 태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다.
■ 각국 규제 강화…하지만 여전히 ‘미흡’
국제사회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화장품과 세정제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제한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회용품 규제와 재활용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감축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미세플라스틱이 이미 환경 전반에 퍼져 있어 ‘사후 제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발생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 생활 속 실천이 핵심…개인이 줄일 수 있는 방법
전문가들은 미세플라스틱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생활 습관 변화’를 강조한다.
미세플라스틱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지만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첫째,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최소화다. 텀블러, 장바구니, 다회용 용기 사용만으로도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둘째, 플라스틱 용기의 가열 사용 자제다.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할 경우 미세 입자 방출이 증가할 수 있다.
셋째, 정수 및 식수 관리다. 고성능 필터를 갖춘 정수기 사용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생수병 사용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합성섬유 의류 세탁 시 주의다. 세탁망 사용이나 저속 세탁은 미세섬유 배출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뜨거운 물은 합성섬유를 더 빨리 손상시켜 미세플라스틱 발생을 촉진한다.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려면 찬물 세탁을 하는 게 좋다. 섬유 유연제는 마찰을 줄여주기도 하지만, 일부 제품 속 향기 캡슐 자체가 미세플라스틱인 경우가 있으므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다섯째, 가공식품 및 포장식품 섭취 줄이기도 하나의 방법이다. 포장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플라스틱 도마 교체, 티백 대신 찻잎 사용, 자동차 급제동·급가속 자제(타이어 마모는 미세플라스틱 발생의 주범 중 하나) 등이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라 건강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완벽한 차단은 어렵지만, 노출을 줄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해법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플라스틱에 의존해온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는 공포’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