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이슈 추적] 코로나19 백신 6천만 회분 대량 폐기...피할 수 없었나

약 2억 3천만 회분 도입해 6천 618만 회분 폐기
코로나19 백신 30% 유효기간 지나 폐기
수요 급감·유효기간 한계…공공보건 정책 숙제 남겨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나를 포함해 전 세계 국가들은 백신 확보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백신은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선구매 계약’을 통해서라도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백신 확보는 국가의 경쟁력과 통했다.

 

이제 팬데믹이 엔데믹 국면으로 바뀌자 그 귀중했던 백신이 대량 폐기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확보했던 막대한 물량의 백신이 접종 수요가 감소하고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잇따라 폐기되면서 정책적 논란도 커지고 있다.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질병관리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현재까지 도입된 코로나19 백신은 모두 2억 2964만 회분이다.

 

올해 3월 말 현재 전체 백신 중 1억 5266만 회분이 접종에 쓰였고, 1024만 회분은 해외에 공여됐다.

 

나머지 6618만 회분은 폐기됐다. 전체의 28.8%에 해당한다. 백신 10개 중 3개가량이 쓰지도 못한 채 버려진 것이다.

 

폐기된 백신은 해가 갈수록 늘었다. 2021년 170만 회분, 2022년 1007만 회분, 2023년 1875만 회분, 2024년 30328만 회분이었다. 이중 99.4%인 6581 회분이 유효기관 만료로 버려졌다.

 

질병청 관계자는 “선(先)구매 계약의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단가와 계약 조건을 공개하 어렵다”고 말했다.

 

폐기된 백신 구매 비용은 수천억 원 규모일 것으로 추산된다.

 

‘안전한 과잉 확보 전략’이 사후에 막대한 폐기 비용과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으로 구매한 백신이 버려진다는 점에서 불신을 가질 수 있다.

 

 

◇백신 급격한 수요 감소

 

백신 폐기의 가장 큰 이유는 접종 수요의 급격한 감소다. 초기에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대규모 접종이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면역 증가와 낮아진 치명률, 그리고 백신에 대한 피로감이 겹치며 접종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추가 접종(부스터샷)에 대한 참여율이 낮아지면서 이미 확보한 물량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고령층과 기저질환자를 제외한 일반 국민의 추가 접종 참여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확보 물량 대비 실제 사용량 간 격차가 커진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부 국가는 수천만 회분의 백신을 폐기하거나 개발도상국에 공여하려 했지만, 물류 문제와 현지 수요 부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짧은 유효기간…재고 관리의 한계

 

백신은 일반 의약품과 달리 유효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보관 조건도 까다롭다. 특히 mRNA 방식의 백신인 화이자 백신과 모더나 백신은 초저온 보관이 필요해 유통과 재고 관리가 어렵다.

 

팬데믹 초기에는 공급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선구매 계약’을 통해 대량 확보가 불가피했지만, 이후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상당량이 유효기간 내 사용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정책적 딜레마

 

백신 폐기가 단순한 낭비로만 볼 수는 없다. 팬데믹 초기 상황에서는 ‘부족’이 훨씬 큰 위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했던 당시에는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백신 폐기 문제는 역설적으로 글로벌 백신 불평등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일부 저소득 국가는 여전히 접종률이 낮지만, 이미 생산된 백신은 유통기한과 물류 문제로 제때 전달되지 못했다. 국제 협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미국은 수억 회분 규모, 유럽연합 일부 국가는 수천만~수억 회분, 일본은 약 2억 회분 이상을 폐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남는 곳에서는 폐기, 부족한 곳에서는 미접종”이라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낭비’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

 

일각에서는 ‘세금 낭비’로 비판하지만, 단순한 실패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백신이 부족했다면 더 큰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공공보건 정책의 본질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 .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려면

 

백신 폐기 사태는 향후 감염병 대응 전략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초기에는 과잉 확보가 불가피했지만, 이후 단계에서는 보다 정교한 수요 관리가 필요했다”고 지적한다.

 

향후 감염병 대응을 위해 ▲일정 물량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인 구매 계약 ▲유효기간 연장 기술 개발 ▲백신 안정성 개선 및 보관 기술 혁신 ▲글로벌 분배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백신 수요를 보다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정책도 중요해졌다.

 

코로나19 백신 폐기는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동시에 공공보건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팬데믹 위기가 또 찾아온다면 ‘부족도 과잉도 아닌’ 균형 잡힌 확보 전략이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