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일반

노년에 살찐 사람이 오래 산다?…‘비만역설’ 이론 맞을까?

국내외 연구에서 입증돼
몸에 비축된 지방과 근육은 훌륭한 ‘에너지 창고’
만성 소모성 질환에 대한 저항력 커져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의학계와 보건학계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뤄지는 현상이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과체중이나 비만은 만성 질환과 사망 위험을 높인다. 그런데 노년층이나 특정 만성 질환자에게서는 오히려 약간 통통한(과체중) 사람이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더 오래 살거나 예후가 좋은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을 ‘비만 역설’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국내외 여러 과학적 검증을 통해 인정됐다.

 

대표적인 국내 연구 사례는 서울대학교 의대 연구팀의 대규모 아시아인 조사다. 약 100만 명의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적 관찰에서, 전체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구간은 BMI 22.6~27.5 사이로 국내 기준으로 볼 때 '과체중~경도 비만' 상태였다.

 

미국 의학협회지(JAMA) 분석으로는 전 세계 288만 명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 결과, 과체중 그룹의 사망 위험이 정상 체중 그룹보다 약 6% 낮게 나타났다.

 

 

노년기나 질환 상태에서 ‘약간의 과체중’이 생존에 유리한 이유는 무얼까.

 

우선 에너지 비축과 영양 상태와 관련 있다. 노년기에는 큰 수술, 대사성 질환, 감염병(폐렴 등)을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때 몸에 비축된 지방과 근육은 신체가 위기를 버텨낼 수 있는 훌륭한 ‘에너지 창고’ 역할을 한다. 영양 상태가 불량하거나 너무 마른 사람은 질병의 스트레스를 견딜 대사적 여력이 부족하다.

 

또 단순히 체중(BMI, 체질량지수)만 보면 과체중이지만, 그 안에 적절한 근육량이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노년기 건강의 핵심은 ‘근육량’인데, 체중이 적게 나가는 노인은 근육과 뼈가 동시에 약해져 있을 확률(근감소증 및 골다공증)이 높아 낙상이나 골절 위험에 취약하다.

 

만성 소모성 질환에 대한 저항력도 관련 있다. 암, 심부전,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은 몸을 극도로 파리하게 만드는 ‘소모성 질환’이다. 약간 통통한 상태에서 체중 감소가 시작되는 것이, 이미 마른 상태에서 골격계와 면역계가 무너지는 것보다 생존율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비만역설’을 맹신해선 안 된다. “살찌는 것이 무조건 좋다”라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BMI는 오직 키와 몸무게로만 계산하므로, 지방이 많은지 근육이 많은지 구분하지 못한다. 통통해서 오래 사는 노인들의 상당수는 지방만 많은 게 아니라 골격근량과 골밀도가 잘 유지된 건강한 체구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배만 나오고 팔다리는 가느다란 ‘복부 비만’(근감소성 비만)은 노년기에도 치명적이다. 통계적으로 마른 사람 중에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이미 암이나 당뇨, 심장질환 등 속병이 있어서 체중이 빠졌거나 장기 흡연으로 인해 마른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즉, ‘말라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병에 걸려 말라 가던 중 사망’한 데이터가 섞여 있을 수 있다.

 

‘비만 역설’은 어디까지나 ‘약간 통통한(과체중~경도 비만)’ 수준에만 해당한다. BMI가 30을 넘어가는 고도 비만은 노년기에도 심혈관 질환, 뇌졸중, 관절염 등을 유발해 사망 위험을 높이고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노년기에는 젊은 시절처럼 무리하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고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몸무게 숫자가 아니라 체성분의 질이다. 만성 질환이 없는 상태에서 약간 통통하게 체중을 유지하되, 걷기나 가벼운 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지키는 ‘통통함’(Fit and Fat)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