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

[이슈 진단] 임신중지약 ‘미프진’ 도입 급물살 탈까

이 대통령 국무회의서 언급, “이 문제 방치는 정부의 무책임”
“허용 주수 논쟁에 빠지지 말고 의사 재량에 맡겨 보자”
낙태죄 공식 폐지 7년째 입법 공백 혼란 지속
산부인과의사단체는 강력 반발, 약사회는 환영

한국헬스경제신문 유재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낙태죄 폐지 이후 대안 없이 표류 중인 ‘임신중지 약물’(먹는 낙태약) 문제에 대해 실용적으로 해결하자며 돌연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허용하고 있는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을 직접 거론하면서 ‘실용적 대안’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이 사안을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선 임신중절의약품 허용이 안 돼 여성들이 해외에서 직구해 복용을 한다. 정부가 나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낙태죄, 낙태 허용 범위 논쟁이 안 끝나 이걸 허용하지 않다 보니 현실적으로 약이 필요한 여성들이 해외 직구로 복용하다 보니 사고가 난다.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다.”

 

“실용적으로 접근하자. 여성의 건강 상태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도 있는데 ‘법으로 반드시 몇 주까지’라고 정하는 게 절대 진리는 아닌 것 같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이라도, 의사의 양심과 재량에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너무 복잡하게 하면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다. 법 밖에 방치하면서 사실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겠지만 국민들은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몇 주로 할 거냐, 이거 하다가 저의 임기가 끝날 것 같다.”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이 문제는 국회와 정부가 임신중지 허용 시기와 방법을 정하는 대체입법 제정 시한 2020년 12월을 넘기며 7년째 표류하고 있다.

 

2021년 1월 1일을 기해 낙태죄는 공식 폐지됐지만, 구체적인 법령이 부재한 탓에 의료 현장과 여성들은 여전히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대체 입법 추진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임신 중지 허용 기간(주수)’이다. 종교계와 여성계, 의료계의 입장 차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2020년 10월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가 임신 14주 이내에는 사유 제한 없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예고를 했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산됐다. 이후 국회에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들 역시 상임위원회에 계류되거나 폐기 수순을 밟았다.

 

그동안 일부 여성들은 해외 직구를 통해 임신중지 의약품인 미프진을 불법 구매하고 있다. 가짜약 복용이나 복용 후 부작용 등 안전상의 위협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적발된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 판매 건수만 2641건에 달했다. 음성적 거래를 포함하면 실제 유통 규모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발언에 국무회의장에서는 논란이 벌어졌다. 오유경 식약처장이 “이 문제는 성평등가족부 소관”이라고 말하자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작년에 업무보고 시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법 개정 전에라도 식약처에서 허용해 주시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의 취지는 미프진 사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주수 논쟁’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입법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만이라도 의료진에 재량권을 줘서 필요한 경우 약물을 처방하고 복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논란은 한성숙 국무총리가 나서 “사안이 예민한 만큼 관계 부처와 함께 안건을 다시 준비하겠다”고 정리하며 일단락됐다.

 

어쨌든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으로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관계부처간 조속한 협의를 거쳐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약품, 미프진 도입 세 번 신청했으나 심사 중지돼

 

미프진 도입이 추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대약품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온 후인 2021년 ‘미프지미소’(미프진)에 대해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한 후 식약처에 국내 품목허가를 처음 신청했지만, 식약처가 자료 보완을 요구하자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이후 2023년 3월과 2024년 12월 품목허가를 재신청했다. 그러나 의약품 허가 시 검토돼야 하는 허가 요건 자료 중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개정돼야 작성 및 심사가 가능해지는 일부 자료가 있어 식약처는 허가 심사 절차를 잠정 중지했다.

 

식약처는 “관련 법률 개정으로 약물에 의한 임신 중지 허용 및 임신 중지 허용 기간이 법률로 정해져야 허가 심사가 가능한 일부 허가요건자료(효능효과, 위해성 관리계획 등)가 있으나 성평등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논의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미프진은 어떤 약물?

 

미프진은 임신 초기에 사용하는 약물적 임신중지 의약품으로,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허용하고 있다. 낙태가 불법이었던 우리나라와 몇 나라만이 처방과 판매가 금지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프진을 필수 의약품으로 등재했다. WHO는 임신 12주 이내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성분의 복합제로, 미페프리스톤 200㎎ 1정과 미소프로스톨 200㎍ 4정으로 구성됐다. 해외에서 ‘미프진’이란 제품명으로 판매 중인 유산유도제다.

 

미프진이 국내에서 정식 허가를 받는다 해도, 감기약처럼 약국에서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의 처방과 진료, 사후 관리 체계가 동반되는 ‘전문의약품’으로 엄격하게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회는 강력 반발, 약사회와 시민단체는 환영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미프진 도입은 임신중지가 처벌이 아니라 권리로 인식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이미 개발된 지 40년 가까이 된 임신중지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충분하다”며 미프진 도입에 대한 신속한 허가를 촉구했다.

 

반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의사회는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기 허용은 국민을 위험한 생체 실험장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약물 투여 전 임신 주수 확인부터 투약 후 완전 배출 여부 확인까지 산부인과 전문의의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투약 가능한 임신 주수의 판단과 부작용에 대한 법·의학적 책임을 ‘의사의 재량’이라는 명목으로 현장 의료진에게 떠넘기는 처사는 무책임하다”며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 명확한 법률적 테두리가 없는 상태에서 자의적 판단만으로 약물을 처방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