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신간] 병원이 아닌, 재가 임종을 위해서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이나미 저,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흔히 병원이라는 의료산업 시스템 안에서 ‘관리’되며, 개인의 삶은 존엄성을 잃은 채 연명되곤 한다.

 

치매를 앓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임종 위기 앞에서, 입원 치료의 관행을 거부하고 가정형 호스피스(방문간호) 시스템을 찾아내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100일이 넘도록 돌보다 하늘나라로 보낸 딸이 그 과정을 책으로 옮겼다.

 

저자 이나미는 의료시설에 맡겨진 죽음 대신, 살던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따뜻한 이별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가족과 요양보호사의 24시간 협업으로 가능했던 재택 임종의 과정을 실감나게 말해준다.

 

“아버지는 완전히 겁에 질려 계셨다. 운명의 포승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표정, 내 아버지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은 차리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를 낫게 할 방법은 없지만, 운명이 허락한 시간까지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마음먹었다.” (페이지 101)

 

“병원에서는 ‘비위관(콧줄)’ 삽입을 통한 영양 공급을 권하였다. 그다음 수순을 물으니,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여 그곳에서 비위 관 관리를 받으며 지내시면 된다고 했다. 결국 낯선 요양병원에서 콧줄에 의존해 연명하다가, 위급해지면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이른바 ‘연명 셔틀’을 반복하며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페이지 155)

 

문제는 재택임종 결정을 실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 등 4대 질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문 호스피스 병동에는 갈 수 없었다. 집으로 가려면 퇴원 후 가정 내에서 수액과 중심정맥관을 관리해 줄 가정간호서비스가 필요했다. 병원은 더 이상 제공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며 퇴원을 권했지만, 정작 퇴원 후 필요한 가정간호를 연결해줄 방법은 없었다.

 

저자는 다른 대학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환자 본인이 병원에 직접 와야만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는 곳도 있었고, 일주일에 최대 두 번 방문이 가능하거나 자원 자체가 없다는 답도 들었다. 대부분은 ‘자기 병원 환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가정간호를 거절했다.

 

마지막 희망처럼 찾아간 곳은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이었다. 병원은 가정형 호스피스·가정간호팀을 연결해 수액과 중심정맥관 관리, 드레싱, 응급상황 대처 교육까지 모두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제야 가족들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임종을 선고받았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117일을 더 보냈고,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

 

저자 이 씨는 자신의 사례가 운이 매우 좋았다고 말한다. 그는 “재가임종을 도와줄 의료진을 만났고 가족들도 함께할 수 있었다”며 “누구나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선택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사회는 아직 아닌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시각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공 교수를 역임했던 저자는 그 과정에 힘겹게 넘어야 했던 현실의 장벽을 경험하며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설계도’도 그리게 되었다.

 

책의 후반부는 철저히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향한다. 노화에 따른 변화를 수용하는 생활 습관의 재편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곡기를 끊어 삶을 마감하는 단식 존엄사에 대한 철학적 사유, 유골을 자연에 뿌리는 산분장, 그리고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생전 장례식’ 기획까지 담았다.

 

타인의 삶을 디자인하던 저자가 이제 스스로를 가장 중요한 클라이언트로 삼아 써 내려간 통찰은, ‘각자도사(各自圖死)’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죽음은 순간이 아닌 과정이며, 그 과정은 다름 아닌 삶의 시간이다.”라는 저자의 선언처럼, 이 책은 생의 마지막 날들을 두려움 없이 맞이하고 싶은 시니어들은 물론, 노부모의 돌봄과 마지막 배웅을 고민하는 모든 자녀 세대가 읽어볼 만한 지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