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새 삶을 기다리는 5만 명…장기 기증자는 400명

올 상반기 뇌사 장기기증 230건...이식 대기자는 5만 4789명
평균 대기기간 4년...하루 평균 8.5명 사망
고령화와 의술 발전으로 장기이식 대기자 증가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 강화 필요
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생명 나눔 교육 필요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장기기증은 한 사람의 죽음이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대표적인 생명 나눔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기술 수준에 비해 장기기증 문화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해 심각한 수급 불균형을 겪고 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5만 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뇌사 장기기증자는 연간 400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올해 상반기 뇌사자의 장기 기증 사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넘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7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뇌사자 장기 기증자는 23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70명)보다 35.3%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간 장기 기증 사례는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연간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2023년 483명에서 2024년 397명으로 줄어든 뒤 작년에는 370명까지 감소했다.

 

뇌사 장기 기증이 줄어드는 사이 기증을 기다리는 이들은 늘고 있다. 이식 대기자는 2020년 4만3182명에서 2024년 5만4789명으로 26.9% 증가했다.

 

2024년 12월 기준 이식 대기자의 평균 대기기간은 4년이었고, 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하루 평균 8.5명이 사망했다.

 

 

◇장기기증의 현실과 과제

 

국내 수많은 중증 환자들에게 장기이식은 치료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다. 그러나 이들이 기다리는 희망은 턱없이 부족하다.

 

신장이식만 보더라도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인한 신부전 환자가 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평균 7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이식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환자만 하루 평균 8명 이상이다.

 

장기기증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빠른 고령화와 함께 만성질환 환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부전, 간경변, 간암 환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심부전과 폐질환 환자 역시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대기자를 늘리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수술 자체가 어려웠던 환자들도 이제는 이식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대기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

 

우리나라 장기기증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인구 100만 명당 장기기증자 수는 스페인이 53.9명, 미국이 49.7명인 반면 한국은 7.75명에 불과하다.

 

스페인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장기기증률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병원 내 전문 코디네이터 운영, 체계적인 기증자 발굴, 적극적인 국가 지원 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실제 기증 단계에서 가족 동의를 얻지 못해 무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국민이 생전에는 장기기증에 긍정적이라고 답하지만 실제 가족 상황에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뇌사에 대한 낮은 이해도 문제다. 의학적으로 뇌사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사망 상태로 인정된다. 하지만 일부 국민은 뇌사를 식물인간 상태와 혼동한다. 심장이 뛰고 체온이 유지되는 모습을 보면 아직 살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기증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의료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뇌사와 장기이식 과정에 대한 정확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기기증 유가족들은 “국가가 생명 나눔에 대한 존중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는 장제비와 의료비 지원, 추모행사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회적 예우 수준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편이다. 기증자 유가족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크게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장기기증은 의료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문제다.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증자가 없다면 이식은 불가능하다. 한 명의 뇌사 기증자는 심장, 간, 폐, 신장 등 여러 장기를 통해 최대 9명 이상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인체조직 기증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제1차 장기 등 기증 및 이식 종합계획(2026~2030)’을 수립해 장기기증 활성화에 나섰다.

 

주민센터와 운전면허 발급기관 등으로 기증희망 등록기관을 확대하고, 연명의료 중단 후 심정지 상태에서 이뤄지는 DCD(순환정지 후 장기기증) 제도를 도입해 기증 경로를 넓힐 계획이다. 또한 기증자 예우 강화와 유가족 지원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기증 희망 등록 확대 △학교 및 군대에서의 생명 나눔 교육 △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예우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