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양성관 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라고 묻는 책들이 많아지고 있다.
의사이자 저술가인 양성관이 지은 신간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는 제목부터 도발적이지만, 책의 내용은 ‘연명치료를 거부하라’는 선언이나 안락사를 주장하는 논쟁서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생각하고 가족과 미리 이야기하자는, 매우 현실적인 삶의 안내서다.
저자 양성관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2008년부터 약 20년 동안 20만 명에 이르는 환자를 진료했고, 호스피스 진료를 경험한 데 이어 지금은 요양원을 찾아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 죽음은 추상적인 철학적 대상이 아니다. 병원과 요양 현장에서 실제로 만난 환자와 가족들의 선택, 갈등, 후회가 바탕에 깔려 있다.
처음에는 의사를 붙잡고 “제발 살려만 달라”고 했던 가족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왜 죽게 두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두 말은 서로 반대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고통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다. 저자 양성관은 이 상반된 마음이 충돌하는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치료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상태까지 살아 있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현대의학은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됐다. 심장이 멈추면 다시 뛰게 할 수 있고,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공호흡기를 달 수 있으며, 신장이 기능하지 않으면 투석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 성취 덕분에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오래 산다. 그러나 의학이 죽음을 없앤 것은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 사이에 치료와 간병, 요양과 돌봄을 둘러싼 수많은 결정이 생겨났다. 즉,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삶을 연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점점 병원과 의료의 영역으로 옮겨왔다고 말한다. 실제로 1990년에는 한국인의 76.6%가 집에서 임종했지만 2022년에는 74.8%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병원은 생명을 지키는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죽음을 내보내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갔다.
죽음이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임종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와 법, 간병과 요양이 얽힌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가 됐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가족의 사랑이 언제나 환자에게 최선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짚는 부분이다. 의료진은 법적 책임을 의식하고, 가족은 후회와 죄책감 사이에서 망설인다. 그 사이에서 환자의 뜻은 뒤로 밀린다. 환자의 뜻과 가족의 사랑, 의료진의 책임과 법의 기준이 모두 ‘최선’이라는 말 안에 뒤섞인다. 그렇다면 마지막 의료에서 ‘최선’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할까.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묻는다. 그렇다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한 장을 써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책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치료, 호스피스 등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보면서, 마지막 순간의 선택은 단순한 ‘치료 중단’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디에서 죽음을 맞을 것인지, 누구에게 돌봄을 받을 것인지,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지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역시 죽음을 결정하는 종착점이라기보다 가족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책은 죽음을 지나치게 무겁고 비장하게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의료 현장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독자는 어느 순간 ‘남의 죽음’을 읽다가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노년층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부모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중년의 자녀에게도, 아직 죽음이 멀게 느껴지는 젊은 세대에게도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가족이 대신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말하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법’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놓지 않는 법이다. 오래 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지, 치료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지, 가족의 사랑이 환자의 뜻보다 앞서도 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책 속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오래 고통받는 죽음, 남에게 짐이 되는 죽음, 끝내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죽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흔히 말하는 ‘마지막 네 가지 소원’이 있다. 사람들이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꼽은 것들이다.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85.8%), 신체적·정신적 고통 없이(85.4%),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84.7%), 가족과 함께하는 것(76.8%)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기계에 기대어 연명하고, 가족 곁이나 집이 아니라 병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삶이 길어진 만큼 생과 사 사이에서 늙고 병드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의학의 발달은 생명을 구했지만, 그 생명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하는 새로운 숙제를 남겼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닌, 서서히 찾아오는 노화와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 연명 사회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연명의료, 호스피스, 안락사, 간병과 같은 낯설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눈앞에 놓였다. 또한 새로운 시대는 죽음의 ‘시간’뿐 아니라, 죽음의 ‘장소’까지 바꿔놓았다.”
“의사는 환자를 집으로 보내고 싶어도 법적 책임을 떠올렸고, 보호자는 집으로 모시고 싶어도 혹시 자신이 가족을 포기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그 사이에서 환자의 뜻은 자주 뒤로 밀려났다. 병원은 생명을 지키는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죽음을 내보내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갔다.”
“우리는 이제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기 어려워졌다. 그 배경에는 의료 제도의 변화, 법적 책임, 가족의 기대, 그리고 죽음을 실패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의료가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더 많은 치료를 더 오래 이어가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환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고통을 낮추고,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함께 살피며, 남은 시간을 다시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죽음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환자의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치료는 병을 낫게 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통을 덜고 남은 시간을 환자의 삶으로 지켜주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간병 살인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고립과 빈곤, 절망과 분노가 뒤엉켜,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절벽 끝에서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비극이다. 긴 병은 효자를 만들지 않는다. 때로는 사랑하던 사람을 죄인의 자리로 밀어 넣는다.”
“의사로서 나는 많은 마지막을 보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내가 목격한 것은 죽음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어떤 마지막은 너무 빠르고 잔혹하게 찾아왔고, 어떤 마지막은 불필요하게 길어져 고통만 늘었으며, 어떤 마지막은 당사자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흘러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살고 싶은 마음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성 사이의 간격은 끝없이 넓었다.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막는 일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고통을 덜고 불안을 줄여, 삶의 마무리를 도왔다.”
“바라는 삶과 마주하는 삶이 다르듯, 바라는 마지막과 마주하는 마지막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간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준비하고, 배우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 책은 과거 환자들의 기록인 동시에, 미래의 나와 당신을 위한 질문이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결국 하나다. 나는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가. 이 책이 누군가에게 죽음을 준비할 용기와, 자신이 바라는 마지막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힘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