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유재민 기자ㅣ
대한민국이 2025년 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빠른 속도로 진입한 이후,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은 개인의 고민을 넘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웰 다잉’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나한테, 우리 가정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생각하고 경험하게 될 사안으로 다가왔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존엄한 삶’이 전제될 때 완성된다. 죽음의 질이 곧 삶의 질인 시대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3편에 걸쳐 ‘웰 다잉’의 문제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2018년 2월, 이른바 ‘웰다잉법(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대한민국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적 치료를 넘어,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고 누적 이행 건수도 40만 건에 육박한다.
◇법과 현실의 간격
하지만 통계 이면의 현실은 차갑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 결정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비율은 약 50.8%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환자의 평소 의사를 추정한 가족의 진술이나 가족 전원의 합의로 결정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 80% 이상이 병원이 아닌 ‘집’에서의 임종을 희망한다. 그러나 실제 노인 임종자의 72.9%는 여전히 요양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2023년 장기요양 사망자 중 약 60%가 사망 전 한 달 동안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거부 의향을 밝혔으나, 실제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친다.
실제로 임종 1개월 내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를 보면, 약 40%는 임종 직전 1주일 이내가 되어서야 중단이 결정되었고, 이들은 그 한 달 동안 평균 6.8개의 연명의료 시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고령 환자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 시술을 경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법과 현실 사이의 큰 괴리다.


◇드러난 문제점
여러 문제점도 드러났다. 현행법은 ‘회생이 불가능하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로 정의되는 ‘임종기’에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다. 그러나 대부분 질환에서는 임종 시점을 의학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임종기 여부에 대한 판단도 상당 부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도 연명의료 시술이 계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에서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2026년 현재 수도권의 대형 병원들은 대부분 위원회를 갖추고 있으나, 지방 중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의 설치율은 50%를 밑돈다. “어디 사느냐에 따라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차별받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환자의 의사가 불분명할 경우에는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 구성원 때문에 임종 직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중단 이후의 돌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인프라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연명의료를 안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통풍과 통증 관리를 받으며 존엄하게 마무리할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호스피스 병동은 여전히 문턱이 높다.
현재 호스피스 서비스는 주로 암 환자에 집중되어 있어, 만성 폐질환이나 간경화 등 다른 질환 환자들이 소외되는 구조적 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법 시행 이후 가장 뚜렷한 변화는 죽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은 더 이상 금기시되는 대화가 아닌, 자신의 권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병원 현장에서도 ‘무조건적인 연명’보다 ‘환자의 의사’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생애 말기 '돌봄'의 문제가 중요
우리 사회는 환자 의사와 무관한 연명의료에 의료자원이 투입되는 가운데, 수요가 높은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에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구조적 불균형’을 갖고 있다.
연명의료가 환자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수준에서 시행된다면, 연명의료에 투입되던 건강보험 재원을 비롯한 사회적 의료자원의 일부를 호스피스·완화의료, 간병지원 등 수요가 높은 생애말기 돌봄에 재배치할 수 있다.
아울러 환자·가족 역시 연명의료에 지출하던 본인부담금 일부를 생애말기 돌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는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설계하고, 생애말기 돌봄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대한민국 사회에 ‘죽음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이제는 형식적인 서류 등록을 넘어, 그간 드러난 여러 문제점을 해소하면서 임종 과정의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으며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적극적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