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헬스경제신문 | 이은직 하나로의료재단 호르몬건강클리닉원장
일상 속 수은 중독
흔히 중금속은 특수한 직업 환경에서만 노출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도 식품, 미세먼지, 생활 습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금속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바다 오염으로 생선에 수은 축적량이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수은은 자연에도 존재하지만 주로 공장, 발전소, 폐기물 등에서 배출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대기로 방출된 수은은 비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며, 물속 미생물에 의해 독성이 더 강한 메틸수은으로 변한다. 메틸수은은 먹이사슬을 통해 생선에 유입되고, 사람이 이를 섭취하면 체내에 수은이 축적되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내분비 장애를 유발하는 수은 중독
동물 실험을 통해 수은이 내분비 기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에 대한 영향은 수은에 노출된 사례를 통해서만 알 수 있어 제한적이지만, 이미 갑상선이나 부신, 난소 및 고환 기능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갑상선
수은은 갑상선 호르몬(T3, T4) 대사를 방해해 갑상선 기능을 떨어뜨린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급성 수은 중독 시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갑상선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현상, 즉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관찰됐다. 이때 T3 호르몬은 늘었지만, T4 호르몬은 오려 줄었다. 수은이 T4 합성을 막는 반면, T4를 T3로 바꾸는 과정은 더 활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수은은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오드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호르몬이 몸에서 제대로 작용하는 것을 막아 갑상선 기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부신
부신은 스트레스 조절과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수은은 부신에서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의 합성 및 대사에 필요한 효소를 방해하여 호르몬 생성을 억제한다. 이로 인해 만성 피로, 기력 저하, 저혈압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생식 기관
수은이 생식샘에 미치는 독성은 특히 우려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수은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 감소와 관련이 있었고, 장기간 노출 시 고환의 무게도 줄었다. 또 메틸수은과 에틸수은을 취급하는 직종수은 중독과 내분비 장애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정자 수 감소, 정자 기형, 성욕 감퇴, 발기 부전이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었으며, 정자 DNA 손상도 확인되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원인 불명의 난임 환자가 가임 여성보다 체내 수은 농도가 높았다.
우리는 수은을 얼마나 섭취하고 있을까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의 합동 식품첨가물 전문가위원회(JECFA)는 성인(60kg 기준)의 일일 섭취 허용량을 수은 42.8㎍, 메틸수은은 13.7㎍으로 정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8~201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혈중 수은 농도는 평균 3.45㎍/L로 안전 기준 이내였다. 직업적으로 노출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수은은 주로 식품을 통해 체내에 유입되며, 한국인의 경우 수은 섭취량의 약 76%가 어패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가 먹는 생선은 안전할까
우리나라 생선의 메틸수은 함량은 조기 71㎍/kg, 고등어 42㎍/kg, 갈치 82㎍/kg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어패류 중금속 잔류허용기준(총 수은 500㎍/kg, 메틸수은 1000㎍/kg)을 넘지 않는다. 즉
성인 기준 갈치 한 토막(80g)을 매일 섭취하더라도 허용량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은 함량은 어종과 서식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대형 어류(참치, 황새치 등)는 먹이사슬상위에 있어 수은 축적량이 많다. 또 중금속은 지방이 많은 부위나 내장에 축적되므로, 생선 내장을 자주 섭취하면 수은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생선을 선택하고 껍질, 기름, 내장을 깨끗이 제거해 조리하면 중금속 노출을 줄일 수 있다.
수은으로부터 건강 지키기
체내 수은 축적을 줄이기 위해서는 셀레늄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셀레늄은 수은과 결합해 독성을 줄이고, 비타민E와 함께 섭취하면 효과가 더 커진다. 육류, 견과류, 달걀, 유제품 등에 셀레늄이 풍부하다. 비타민C는 체내 수은 배출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어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 것도 좋다. 또한 혈액 중금속 검사를 통해 유해 중금속(수은, 비소, 카드뮴, 납, 알루미늄, 세슘)의 체내 농도를 확인할 수 있다. 장기간 중금속 노출이 의심되거나, 관련 증상이 있는 경우 전문의 상담과 검사를받아 볼 것을 권한다.
최근에는 화장품, 세제 등 화학제품 사용과 환경 오염으로 중금속 노출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정기검진과 생활 습관 개선으로 예방에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 생선도 무조건 피하기보다 권고량을 지키며 안전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