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젠더

“끝나지 않은 미투” 안희정 8천만 원 배상 판결 받아

1심, “안희정과 충남도는 8347만 원 공동배상하라”
손배 소송 4년 만에 첫 판결 나와
법원, 안 전 지사와 충남도의 2차 가해 인정
피해자 김지은씨 “반성 없는 안희정과 끝까지 싸우겠다”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미투’가 다시 소환돼 법의 판결을 받았다.  사법적 단죄는 내려졌다 해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들이 형사법정에 가해자를 세워 실형을 살게 한 후, 가해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다.

 

그러나 손배소송은 간단하지 않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대학병원에서 인정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하므로 과정이 간단치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진 여성들의 ‘미투’가 한국 사회에도 퍼지기 시작한 건 2018년 초다. 그해 1월 서지현 당시 검사가 JTBC 뉴스룸에 나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게 시발점이었다.

 

그 두 달 후인 3월 사회와 정계를 큰 충격 속에 몰아넣은 충격의 ‘미투’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정치적 거물이었던 안희정 충남지사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안 지사가 자신을 수 차례 성폭행했다고 같은 방송에 자진 출연해 폭로한 것이다.

 

 

이 ‘미투’는 성범죄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를 두고 우리 사회에 엄청난 갑론을박을 야기했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이 사실상 처음 등장했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성적 자기 결정권’의 범위 등에 대한 논란과 함께 ‘예스 민스 예스 룰’ ‘노 민스 노 룰’ 같은 말들이 회자됐다.

 

1심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보고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이를 뒤집어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된 것만 보더라도 법적 공방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법원이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결하는 경향이 굳어졌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안 전 지사는 만기출소했지만 미투 폭로 발생 6년이 지나서도 또 한번 미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최욱진)는 24일 김지은씨가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제기한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가 8347만 2044원을 공동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배상액 가운데 3000만 원은 안 전 지사 혼자 배상하고, 나머지 5347만 원은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가 공동 배상하라고 밝혔다.

 

김씨가 안 전 지사의 확정판결 1년 뒤인 2020년 7월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법원은 안 전 지사의 강제추행 및 피감독자의 간음, 업무상 위력을 이용한 추행 등 불법행위와 이후 2차 가해에 대한 책임 모두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안씨가 형사 사건 기록에 포함된 진단서‧진료기록을 유출해 전 부인 민주원이 비방글을 게시하는 걸 방조한 책임도 있다”고 2차 가해를 인정했다. 민씨는 재판 과정에서 김씨가 새벽에 부부 침실을 엿봤다는 등 김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었다.

 

재판부는 김씨의 피해에 충청남도의 책임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강제추행 등 불법행위는 안 전 지사의 직무 집행과 관련성이 있어 국가배상법상 충남도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충남도는 당시 김씨의 폭로 직후 비서실 명의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반박 성명을 냈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측근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안희정의 무고함을 주장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재판은 신체감정 결과를 기다리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씨는 안 전 지사의 성폭행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신체감정을 받아야 했다. 신체감정은 대학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전문의에게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고, 감정을 요청해도 병원에서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절차가 지연됐다.

 

김씨가 배상받을 금액은 청구액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승소비율에 따라 정하는 소송비용 부담 원칙에 따라 김씨는 소송비용 상당액도 내야 한다. 소송비용에 포함되는 신체감정비용에만 약 4000만 원을 썼다는 게 김씨 측 설명이다.

 

김씨측 대리인은 판결 후 “안희정이 사임을 했기 때문에 사임 이전까지는 충청남도와 공동 책임인 것이고 사임 이후에 수사와 재판, 2차 가해 부분은 별도로 안희정 단독 책임지는 부분인 것”이라며 “치열하게 다툰 부분 인정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배상 액수가 아쉽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당시 수행비서였던 김씨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을 악용해 4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3년 6월 형기를 모두 채우고 2022년 8월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했지만, 공직선거법에 따라 출소를 기점으로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부인 민주원 씨와는 2021년 9월 합의이혼했다.

 

 

김씨는 판결 후 입장문에서 “민사소송을 통해 그동안 성폭력의 피해를 입고도 정작 고통의 시간을 돌려받지 못했던 많은 분들께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랐다. 재판부에서 안희정의 책임과 더불어 도청과 주변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인정해주신 부분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지금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안희정과 충남도청 그리고 2차 가해자들과 끝까지 싸워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