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이슈추적-존엄한 죽음] (下)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과제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우선 광범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
죽음에 대한 사회적 교육, 공론화 필요

한국헬스경제신문 김혁 기자ㅣ

 

대한민국이 2025년 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빠른 속도로 진입한 이후,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은 개인의 고민을 넘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웰 다잉’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나한테, 우리 가정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생각하고 경험하게 될 사안으로 다가왔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존엄한 삶’이 전제될 때 완성된다. 죽음의 질이 곧 삶의 질인 시대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3편에 걸쳐 ‘웰 다잉’의 문제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연명의료결정법과 조력존엄사 입법 논란은 단순히 법을 만드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가 인간의 마지막을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다.

 

그간의 논쟁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가야 할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많은 연구와 토론, 논쟁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자기결정권’의 실질적 보장: 임종기에서 말기로의 확대

 

현행법은 ‘임종기’ 환자에게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지속되는 상태의 말기 환자나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하는 게 필요하다.

 

임종기 판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정작 고통받는 환자들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임종 직전까지 연명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미리 작성한 의사를 존중하되, 판정의 공정성을 위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다만 조력사가 허용되더라도 대상자 선정, 상담 과정, 최종 결정 단계에 대한 다중의 엄격하고 촘촘한 검증 장치가 필요하다.

 

2. ‘사회 안전망’ 강화: 호스피스 등 생애 말기 돌봄

 

조력존엄사 도입에 앞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인프라 확충’이라는 문제다.

 

경제적 부담이나 간병 고통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존엄사가 아닌 ‘사회적 타살’이 될 위험이 있다.

 

병원이 아닌 익숙한 집에서 통증 조절과 심리적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가정형 호스피스’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야 한다. 정부는 현재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살던 곳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재택의료센터’를 더욱 확충해야 한다.

 

간병 비극(간병 살인 등)을 막기 위한 공적 돌봄 시스템이 완비된 후에야 비로소 죽음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진다.

 

 

3. 죽음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웰다잉 문화’ 조성

 

법적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죽음을 금기시하기보다 생애 초기부터 ‘죽음 교육’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을 설계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재산 상속뿐 아니라 장례 방식, 유품 정리, 남기고 싶은 메시지 등을 미리 기록해두는 문화를 지자체와 민간이 협력해 보급하는 게 이상적이다. 이른바 ‘엔딩 노트’다.

 

사회적으로는 종교계, 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상설 기구를 만들어 조력존엄사 같은 민감한 이슈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4. '존엄한 삶'이 전제돼야 한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존엄한 삶’이 전제될 때만 완성된다. 국가의 역할은 죽음을 허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대우받을 수 있는 ‘돌봄의 품격’을 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