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성소수자들 및 지지단체들과 행정기관 간의 마찰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대립 중이다.
진보정권이냐 보수정권이냐에 따라 행정집행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지만, 대체로 성소수자 관련 집회나 의사 표현들은 자유로운 출구가 막히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 한복판 건물 외벽 전광판에 동성 연인이 입을 맞추는 광고 영상이 등장했다가 나흘 만에 사라졌다.
이 광고는 성 소수자 간의 데이팅앱을 운영하는 국내 회사가 강남구 논현동 강남대로변 한 건물 외벽 전광판에 광고로 송출한 것이다. 영상은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이 서로 마주 보며 가볍게 입맞춤하거나 포옹하는 모습이다.
앱 운영사는 전광판 광고 회사와 20초 분량의 영상을 하루 100회 이상 1년간 송출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항의 민원이 잇따르자 강남구청 측은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며 광고를 내리도록 조치했고 전광판 광고회사는 나흘 만인 지난달 30일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강남구청 측은 “등굣길에 불건전한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는 민원이 여러 건 들어와 대응한 것”이라며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광고 회사에 해당 영상 송출을 배제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구청 측은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내용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광고는 금지한다’는 옥외광고물법을 근거로 들었다.
구청 관계자는 “관련법령에 따른 것일 뿐 성적 취향 등 개인의 가치관에 대해선 중립적 입장이다. 민원 대응 차원이라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 소수자 지지단체들은 동성애를 음란하고 퇴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행정기관의 판단은 엄연한 차별이자 혐오이며 세계적 흐름과도 어긋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은석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은 “강남구청은 민원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을 하지만 사실 행정기관의 시선이 반영된 결정”이라며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를 무조건 ‘음란’, ‘퇴폐’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혐오적 시선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사례들
행정기관이 성소수자 콘텐츠에 제동을 거는 일은 이전에도 수차례 벌어졌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차별적 행정’으로 판단해왔다. 지난해 5월 인천시가 인천여성영화제조직위에 ‘퀴어 영화를 상영하면 영화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주최 쪽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인권위는 “인천시 행정은 차별적이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2021년 고 변희수 하사의 복직을 지지하는 지하철 광고에 대해 서울교통공사가 게재를 불허한 데 대해서도, 인권위는 시정을 권고했다.
최근 대전광역시가 대전여성영화제 개막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동성애자 딸과 어머니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영화 ‘딸에 대하여’ 상영을 취소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됐다. 주최 측인 대전여성단체연합은 보조금을 반납하고 시민 모금을 통해 영화제를 진행했다.
지난해 6월 열렸던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는 행정기관끼리 주최 측의 대중교통전용지구 내 무대 설치 문제를 놓고 초유의 대치를 벌인 바 있다.
대구시는 무대 설치를 막기 위해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는데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적법한 집회며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며 무대 설치 차량 진입을 위한 길을 터줬다.
지난 5월 대구지법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행정대집행이 위법했으며, 집회 개최를 방해한 중과실을 인정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올해로 16번째를 맞이하는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오는 28일 ‘꺾이지 않는 퍼레이드’라는 슬로건 아래 대구 중구 동성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혀 또 한 번의 마찰이 예상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에 대해 “집회 제한구역에서 도로를 차단하고 개최한다면 위법”이라며 “위법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찰청과 협의해 미리 대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