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영국 BBC방송은 지난달 27일 서울발로 ‘한국 스타의 아기 스캔들이 전국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방송은 “한국 배우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드러나 유명인의 행동과 비전통적인 가족 구조에 대한 전국적 논쟁이 촉발됐다”며 “정우성은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다한다고 했지만 결혼외 출산이 금기시되는 보수적인 나라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외국 언론도 관심을 가질 만큼 정우성-문가비의 혼외자 출생이 전통적 가족형태를 고수해온 우리 사회에 ‘비혼 출산’ ‘비혼 동거’ 논의로 옮겨붙으며 이슈화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과 출산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으로까지 파급되는 돌발적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비혼동거’ 가족 형태에 대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주로 진보 정치권이 주도했다.
지난해 4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최초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해 6월 장혜영 당시 정의당 의원도 ‘가족구성원 3법(생활동반자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을 이어 발의했지만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정의 가치를 파괴할 수 있고 동성혼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는 이유로 종교 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했고, 관련법 논의는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계와 진보단체에서는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산, 육아, 주거, 세제 등 각종 사회보장 제도에서 배제되는 걸 막고, 저출생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통계청의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 중 비혼 출생 비율은 4.7%였다. 비혼 출생아 수는 1만 900명으로 2022년보다 1100명 늘었다.
정우성-문가비 비혼출산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다시 ‘동거혼’ 법안 제정을 제안하는 여야 의원들과 지자체가 나왔다.
대통령실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어떤 면을 지원할 수 있을지 앞으로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프랑스가 1999년 시행한 ‘등록동거혼(PACS)’ 도입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18세 이상 커플이 관청에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혼인 가족에 준하는 출산, 육아, 세금, 복지 혜택 등을 주는 제도다. 계약 관계이므로 계약 해지로 관계가 종료되며 위자료나 재산분할이 없다.
프랑스의 경우 등록동거혼의 70% 정도가 법률혼으로 발전하고 30% 정도는 동거를 해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동거혼이 법률혼보다 많다. 이 제도는 프랑스가 저출생을 극복한 사례로 자주 언급돼 왔다.
나 의원은 “이제는 저출산을 극복하는 제도로뿐만 아니라 비혼 출산 아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등록동거혼 제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그러나 “다만 프랑스와 달리 동성 커플의 경우는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일 “갈수록 많아질 이 땅의 문가비씨 모자를 위한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을 주장했다. 연대관계인(혹은 보호인)으로 등록한 사람은 미성년인 자녀가 있는 한부모 가정이나 1인 가구의 수술, 장례 등에 가족을 대신해 동의해줄 수 있다.
경북도도 저출생 지원 대상을 부모 및 법률혼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경북도는 자녀를 출산한 동거인에게 부모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동반 가정 등록제’ 도입 추진을 정부에 건의하고 국회 입법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혼외자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7년 책 ‘이상한 정상가족’을 펴냈던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정우성-문가비 경우를 언급하며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이를 혼외자·혼중자로 구분해 부르는 것 자체가 정상성에 대한 지독한 강조인데다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현행 민법은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태어난 아동을 ‘혼인외의 출생자’(혼외자)와 ‘혼인 중의 출생자’(혼중자)로 구분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다수가 이미 낡았다고 느끼는 차별적 용어인 ‘혼외자’라고 아이를 부르지 말자. 아이를 중심에 두고 보자. 혼외자가 아니라 그냥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여가부에서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 이상(75.6%)이 혼인 외의 출생자라는 법적 용어 폐기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