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젠더

[헬스&이슈] 각국의 뜨거운 감자...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영국 법원 , “성전환 여성은 여성으로 간주할 수 없다” 판결
서유럽 국가 대다수는 본인 신고만으로 성별 정정 가능
성별은 '신체가 아니라 정체성이 기준' 정립돼가는 추세
수술 여부, 미성년자 문제, 여성권리와의 충돌 등 문제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어떤 조건을 요구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인간의 정체성, 신체의 의미, 국가의 역할, 철학과 종교적 신념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각국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법철학 속에서 각기 다른 해법을 선택해왔다.


성별 정정을 허용하는 국가들은 대개 ‘의학적 수술 여부’를 기준으로 삼거나, 본인의 ‘자기 결정권’을 우선시한다.

 

수술이나 진단 없이 자기결정권에 따라 신청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한 나라는 스페인,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아일랜드, 벨기에,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핀란드, 스위스 등으로 서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초로 자기결정권을 도입했고 칠레, 우루과이, 콜롬비아, 브라질 등이 있다.

 

수술, 호르몬 치료 또는 정신과 진단 등 의학적 요건이 필요한 나라는 우리나라(대법원 판례 등에 의해 가능하나 절차 까다로움), 일본(성전환 수술 요건에 대한 위헌 판결 이후 변화 중), 대만 등이 있다.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금지한 국가는 대체로 종교적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2023년 법적으로 성별 정정 및 성전환 관련 의료 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헝가리도 2020년 출생 시 성별을 바꿀 수 없도록 법을 개정했다. 조지아, 슬로바키아도 그런 나라다.

 

중동 및 아프리카의 많은 이슬람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등)는 성전환 자체를 범죄화하거나 법적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단, 이란은 예외적으로 의학적 성전환 수술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제약이 매우 크다.)

 

◇영국 법원,  보수적 결정 내리다-"성별은 남자와 여자 둘뿐이다"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한 나라가 있었다. 영국이다. 영국에선 이 문제가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었다.

 

영국 대법원이 16일 “성전환 여성을 영국의 평등법이 정의하는 ‘여성’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법적 평등 사안에서 사람의 성별은 남자와 여자 둘뿐이라는 보수적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판결은 판사 다섯 명의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영국 대법원은 판결에서 “2010년 평등법에서 ‘여성’과 ‘성’(sex)이라는 용어는 생물학적 여성과 생물학적 성을 의미한다”며 “평등법에는 ‘생물학적’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생물학적 차이는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며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남성과 여성은 그들이 속한 성별 집단과 공유하는 생물학을 통해 구분된다”고 밝혔다.

 

영국 평등법(Equality Act)은 2010년 제정된 영국의 반(反)차별·양성 평등법이다. 이 판결로 영국서 여성으로 인정하는 인증서를 가졌더라도 성전환 여성은 법적 평등 사안에서 여성으로 간주되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대법원의 판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과 같은 흐름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대통령 취임 당일 “주관적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별만 인정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이라는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대법원 판결 후 “항상 생물학적 성에 기반한 단일 성별 공간의 보호를 지지해 왔다”며 “이번 판결은 여성과 병원·보호소·스포츠 클럽과 같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명확성과 확신을 가져다준다”고 논평했다.

 

대법원 판결은 영국 내의 화장실이나 병원, 감옥, 체육 시설과 같은 남녀별 분리 시설 사용 문제와 성별 권리 사안에서 실질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에 대해 트랜스젠더 인권 확대를 주장해 온 쪽에서는 “트랜스젠더를 법률적으로 배제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여성 단체는 “성별을 생물학적으로 구분한 것이 법률 취지에 부합한다”며 환영했다.

 

대법원은 다만 “이번 결정으로 특정 집단이 승리하고 다른 집단이 패배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서 “성전환자도 여전히 다른 법률에 의해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성전환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받는다면 그에 따라 차별 피해를 주장할 수 있고 특히 어떤 사람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가 아닌 단순히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불리하게 대우받았다면 이는 직접적인 성차별로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소송은 스코틀랜드 의회의 분란에서 시작됐다. 2018년 스코틀랜드 지방의회는 스코틀랜드 내 공적 기구 이사회에서 여성 대표가 50%를 차지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엔 성전환 여성도 여성에 포함됐다.

 

그러자 여권 단체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여성을 위하여(FWS)’가 여성을 재정의하는 것은 의회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이 법의 합헌성을 문제 삼았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낸 이 여성 단체를 지원한 사람 중에 ‘해리 포터’ 작가 J.K. 롤링이 포함되어 있다. 롤링은 이 단체의 소송에 수만 파운드를 기부했다. 그는 성전환으로 여자가 된 사람의 권리를 위해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권리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별 정정의 쟁점은?

 

성별 정정 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여성 권리와의 충돌이다. 여성 스포츠에서의 공정성, 여성 전용 공간(화장실·탈의실), 성폭력 보호 정책 문제 등과 직결된다. 일부 여성단체는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으로 인정될 경우 기존 여성 보호 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핵심 쟁점은 의료 개입의 필요성 여부다. 과거 대부분 국가는 성전환 수술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신체 훼손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논쟁은 수술 여부보다는 “성별은 몸인가, 정체성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집중돼 있다.

 

최근 가장 민감한 영역은 미성년자 문제다. 호르몬 치료 허용 여부, 부모 동의 문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에 대한 우려 등이다.

 

일부 국가는 청소년 성전환 치료를 제한하거나 재검토하고 있으며, 이 문제는 의학적·윤리적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철학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

 

성별 정정 문제는 결국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 질문으로 이어진다.

 

성별은 타고나는 것인가, 선택하는 것인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 질서 중 무엇이 우선인가. 국가가 개인의 몸과 정체성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이 논쟁은 생명윤리학, 법철학, 젠더 연구가 교차하는 대표적인 현대 이슈다.

 

각국의 정책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커질수록 정책은 더 다양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적 안정, 두 가치 사이에서 각국은 저마다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 균형점은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허용은 하되 문턱은 높다

 

한국에서 성전환자의 법적 성별 변경은 별도의 법률이 아니라 대법원 판례와 하급심 실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즉, 명문화된 기준이 아니라 법원이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다.

 

2006년 대법원은 처음으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허용했다. 이후 2011년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됐다. 핵심은 “일관된 성정체성과 사회적 생활”이다.

 

다만 이는 선언적 기준일 뿐, 실제로는 여러 엄격한 요건이 함께 요구된다. 현재 법원에서 인정되는 주요 조건은 정신과 전문의의 성전환 진단, 장기간의 호르몬 치료, 외부 성기 등 신체 변화, 혼인 상태가 아닐 것,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 등이다.

 

특히 가장 큰 쟁점은 생식능력 제거(불임 상태)다. 명문화된 법 조항은 없지만, 사실상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