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뷰티

‘우아함의 황제’ 조르지오 아르마니 별이 되다

91세로 사망...평생 독신으로 살아
간결하고 실용적인 '미니멀리즘' 구현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 ‘아르마니 왕국’ 건설

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세계 패션계의 거물이자 현대의 가장 탁월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4일(현지 시간) 91세로 사망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룹은 “끝없는 슬픔 속에 창립자이자 창시자, 그리고 끊임없는 추진력을 가졌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사망을 알린다. 그는 마지막 날까지 회사, 디자인, 미래사업에 대해 헌신했다. 아르마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집에서 사망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6월 처음으로 밀라노 남성 패션위크에서 아르마니 브랜드 쇼에 불참하면서 건강상태가 알려졌다.

 

 

아르마니를 수식하는 단어를 꼽자면 ‘우아함의 황제’ ‘미니멀리즘의 거장’이다.

 

그는 ‘우아함이란 곧 단순함’이라는 신념으로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단순함과 간결함, 그리고 절제된 색상과 고급 소재로 우아함을 구현했다. 전통적 남성복의 경직성을 무너뜨리고 여성복에도 새로운 자유로움을 부여했다.

 

안감을 뺀 심플하고도 우아한 아르마니 정장은 부유한 남성의 옷장 필수품이 됐다. 어깨 패드가 달린 재킷과 남성용으로 재단된 바지로 구성된 ‘파워 슈트’는 1980년대 부상하는 비즈니스 여성 계층의 상징이 됐다. 바지 정장을 직장 내 여성 복장으로 도입한 것은 패션계에 혁명적이었다.

 

아르마니는 1990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항상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걸 생각하는데 대부분은 빼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34년 이탈리아 작은 도시 피아첸차에서 태어난 아르마니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가 대학에서 2년 만에 중퇴했다. 패션을 공식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유명 백화점에서 쇼윈도 진열을 돕는 일을 제안받으며 패션계에 발을 내디뎠다.

 

41세가 된 1975년 공동 창업자인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폭스바겐을 1만 달러에 팔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남성 기성복 ‘조르지오 아르마니 S.P.A’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여성복은 1년 뒤 선보였다. 갈레오티가 1985년에 사망한 뒤엔 혼자 회사를 이끌어 왔다.

 

아르마니는 경영자로서도 성공했다. 그의 그룹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엠포리오 아르마니 등 기성복부터 향수·화장품·가구·호텔·레스토랑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아르마니 그룹은 직원 9000여 명을 두고 세계 600개 매장과 7개 생산 거점을 운영한다. 2023년 매출은 23억 유로(3조7000억 원) 규모였다. 아르마니는 그룹의 유일한 지분 소유자였다.

 

포브스는 그의 재산을 121억 달러(16조4000억 원)로 평가했다. 세계 최고 부자 순위 177위다.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 소피아 로렌, 로버트 드니로, 조지 클루니, 숀 펜, 앤 해서웨이,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등 수많은 유명인사가 그의 옷을 입었다.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리처드 기어가 입은 아르마니 슈트는 세계 패션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이 영화 이후 200편이 넘는 영화 의상을 맡았다.

 

아르마니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는 없다. 그는 사생활을 철저히 관리하며 회사를 강력히 통제해 회사의 독립성을 유지했고, 브랜드를 신뢰 관계에 있는 소수의 가족이나 측근 중심으로 운영했다. 프랑스 럭셔리 대기업들의 인수 제안을 평생 거절했다.

 

아르마니 그룹을 이끌 후계자로는 아르마니의 오랜 연인으로서 남성복 브랜드를 이끌어온 판탈 레오 델로르코와 여성복을 담당하는 조카 실바나 아르마니가 거론된다.

 

아르마니의 옷을 자주 입었던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 디자이너의 우아함, 창의성을 기억한다”며 “최고의 이탈리아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아르마니 그룹은 6일과 7일 밀라노에 조문 공간을 마련하고, 이후 비공개 장례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