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지난해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가브리엘르 블레어 저서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원제는 ‘Ejaculate Responsibly’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말 번역 출간됐다.
“콘돔을 쓰고 안 쓰고가 성관계의 쾌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예를 들어 쾌락이 없는 상태는 0, 최대치의 쾌락은 10이라고 해보자. 콘돔을 사용했을 때의 성관계는 어느 정도의 쾌감일까? 7? 아니면 8? 콘돔을 썼을 때의 성관계는 쾌락이 전무한 상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쾌락이 적은 상태일 뿐이다.”
“남자들이 콘돔을 쓰지 않는 성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조금 더 강한 몇 분간의 쾌락을 경험하기 위해 여자의 몸·건강·사회적 지위·직업·경제적 지위·인간관계, 심지어는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다. 남자들은 정말로 여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몇 분간 조금 더 강한 쾌락을 택한다고? 그렇다.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길가에 핀 민들레만큼이나 흔해 빠졌다.”

이 책은 통렬하게,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선 통쾌하면서도 도발적으로 일갈한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정자’라고. 정자는 사정을 통해 배출된다. 이 말은 원치 않은(또는 원했든) 모든 임신의 원인과 책임은 피임을 하지 않은 채 질 속에 사정한 남성에게 있다는 의미다.
이제껏 임신중단 논쟁은 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다. 피임은 언제나 여성의 몫처럼 여겨졌고, 그 과정에서 겪는 불편함과 위험은 무시됐다. 그런데 이 책은 이제는 논란의 초점을 남성에게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성들은 피임을 위해, 임신중단을 선택할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남성들은 과연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있는가라고 질타한다. 임신중단을 한 건 원치 않는 임신을 했기 때문이고, 원치 않는 임신은 남성이 피임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정자를 여성의 질 안에 배출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단호하게 말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법적, 윤리적 논쟁은 남성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남성이야말로 모든 논쟁의 중심에 서야 한다.”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고 사라진 2019년 이후, 임신중단은 ‘범죄’가 아닌 여성의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유산유도제를 도입하지 않고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거나 관련 의료서비스를 지원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권리는 요원한 상태다. 이 논쟁에서 정작 정액을 배출해 생명을 잉태시킨 남자는 빠졌다.
저자는 남성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조목조목 설명한다.
여성의 배란은 비자발적이지만, 남성의 사정은 자발적이다. 여성은 난자를 통제할 수 없지만, 남성은 사정 시기를 조절하며 정자의 배출을 통제할 수 있다. 여성의 피임은 까다롭고 위험한 반면, 남성의 피임은 손쉽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생식 가능한 날이 50배 더 많다. 정관절제술은 난관결찰술보다 위험이 적다. 여자는 쾌락을 느끼지 않고도 임신할 수 있다. 남자들은 자신의 몸과 성욕을 생각보다 잘 제어할 수 있다.
저자는 호소한다. 제발 콘돔을 쓰라고. 콘돔을 거부하는 남성들에겐 정관절제술을 권한다. 그마저도 싫다면 체외사정이라도 하라고 말한다.
여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 해도 남자가 자신의 질 안에 사정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자를 어디에 둘지 선택하는 건 남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남자가 콘돔 없는 성관계를 하기로 선택했다면 원치 않는 임신을 유발할 위험을 선택한 것이다.
남자가 삽입하는 동안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는 누구도 위험에 빠뜨리거나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삽입을 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남자는 여자의 몸, 건강, 소득, 관계, 사회적 지위, 심지어는 목숨까지 위협하고 다른 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비난의 화살은 남성과 무방비하게 성관계를 맺은 ‘헤픈’ 여성을 향하고, 남성은 원치 않은 임신의 위험과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쉽게 도망쳐버릴 수 있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고 남성의 쾌락을 우선하는 문화, 임신·출산의 위험성과 양육에 필요한 막대한 노력을 지적하며 법과 제도나 문화적 변화를 통해서든 남성이 책임 있게 사정하도록 하는 것만이 임신중단을 해결하는 올바르고 가장 빠른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남녀 모두를 위한 가장 간단하고 완벽한 해결책, 그것은 바로 “남성들이여,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는 한 마디뿐이다.
저자 가브리엘르 블레어는 여성 크리에이터와 기업가를 위한 세계적인 커뮤니티 ‘알트 서밋’의 설립자로, 월스트리트저널 최고의 블로그로 선정된 ‘DesignMom.com’을 운영 중이다. 여섯 아이의 엄마이며 ‘임신중단의 책임은 남성에게 있다’라는 주장으로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