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건강칼럼> ‘럭셔리’ 노년

건강을 지키고 성취하는 시니어

 

한국헬스경제신문 | 박건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업차 외국에서 귀빈이 오셨는데 한 번 만나 달라고 하였다. ‘럭셔리’ 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스위스 사람인데, 말하면 다 아는 명품 브랜드 회사에서 중역을 지내고, 이제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러 우리나라에 와 있다고 하였다. 럭셔리 월빙 센터(luxury well-beingcenter)를 한국에 만들고 싶다면서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부탁이니 만나겠다고 하였지만 만나기 전까지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경제력이 받쳐 주지 못해서인지 나는 명품이라는 것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것을 걸치거나 들고 다니는 것이 겉보기에 좋을지는 모르나 자기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신 포도의 비유에서 보듯,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합리화인지도 모른다. 이는 나 자신에 그치지 않고 아내나 자식에게도 명품을 선물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그와 만나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웰빙 센터에 비싼 이태리 대리석과 최고급 가구로 채워진 모습을 그려 보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그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친구의 입장이 뭐든 돌직구를 날리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럭셔리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시원치 않으면 나는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매우 흥미로운 답을 주었다. 그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명품과 달랐다. 그는 말했다.

 

“저는 명품을 팔아 많은 돈을 번 사람이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럭셔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나이가 들어 시계, 옷, 가방의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노년에서의 럭셔리는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에 걸리면 명품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럭셔리 웰빙이라는 단어를 건강한 생활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노년에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은 건강이며, 그것이 진정 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제가 가진 재산을 노년층 건강을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


멋진 대답이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앞섰다. 웰빙이라는 말 자체가 건강한 생활임을 뜻하는 것인데, 굳이 럭셔리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소망과 성취의 불일치였다. 누구나 건강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소망이 곧 성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대화를 통해 ‘럭셔리’라는 말을 ‘값비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충분히 값을 치르고 싶어지는 건강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서로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게 풀어졌다. 나는 대한민국이 엄청난 의학적 발전을 이루었고, 병이 있는 상태에서도 가장 오래 사는 나라임을 이야기하면서, 건강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지리라예상한다고 말했다. 명품 건강에는 몸도 마음도 포함된다. 유럽에 가면 건강한 노인을 많이 만나게 된다. 유럽의 젊은 층에 비해 훨씬 멋지게 보인다. 그들에게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더해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적 전통에 따른 절제와 경건함도 있다.

 

그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의 노년층에게도 자리잡았으면 한다는 내 이야기에 그는 전적인 동의를 표하였다. 신기하게도 영어가 술술 나오는 바람에 한 시간 약속이 두 시간 넘는 대화로 이어졌다. 나는 그가 만들고 싶어 하는 웰빙 센터의 개념과 그 실체를 더 알고 싶었고, 그는 자신의 생각이 대한민국 정서에 맞을지 궁금해했다.

 

우리는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서로의 생각을 여러 각도에서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약속까지 하고 헤어졌다. 비즈니스 차원의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나눈 상쾌한 대화였다. 명품에 대한 나의 편견도 조금 순화되었다. 


누구나 우아한 노년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어지는 은혜와 축복을 간절함과 감사함으로 여기지 못한다. 잃으면 너무나 소중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건강을 소비하고 소모해 간다. 그러다 병든 자신의 몸을, 정신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졌던 건강이라는 자산이 얼마나 중요하였고,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노년에 자랑하고 다닐 것이 무엇인가? 노년에서의 진정한 명품, 럭셔리 아이템은 건강이다. 돈으로 쉽게 얻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여 얻는 건강이 명품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