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성병은 과거엔 ‘Venereal Diseas’(VD)로 불렸다.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Ven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성의 유혹으로 성병이 생겼다고 여기게 하거나 이 질병에 대한 세간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성병은 현대에서는 ‘성매개 질환’(Sexually Transmitted Disease, STD)으로 통용된다. 직접적 성행위로 전파될 수 있는 모든 감염성 질환과 함께 성관계가 아니더라도 보균자와 생활하면서 감염되는 질환을 아우르는 말이다. 요즘에는 결혼 전에 예비 신랑 신부가 STD 6종, 12종 검사 같은 것을 해서 서로 성병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성병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공포에 떨게 한 질병은 바로 ‘매독’이다. 중세는 매독의 전파가 시작한 시기로 주로 전쟁과 군대의 이동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후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유럽의 매독 파급은 공중보건에 커다란 위기였다.
당시 사람들은 매독을 신의 징벌로 여겼으며 이는 이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낙인을 초래했다. 매독은 특히 성적 방탕과 매춘과 관련돼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18세기 후반 런던에서는 15세에서 34세 사이 인구의 20% 이상이 매독 치료를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매독(梅毒, syphilis)이라는 이름은 ‘매화처럼 피어나는 독’이다. 병에 걸렸을 때 몸에 생기는 발진과 피부 궤양이 마치 ‘매화꽃이 핀 것’처럼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졌다.
매독에 걸렸다고 알려진 역사적 인물은 많다. 모파상, 마오쩌둥, 알 카포네, 슈베르트, 고갱 등이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간 학자들 사이에서는 매독의 기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한쪽에선 매독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해 1493년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에선 콜럼버스의 출항 이전에도 매독균이 이미 유럽 대륙에 잠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의 9000년 된 유골에서 매독 계열의 박테리아 게놈이 발견되면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원했다는 학설에 힘이 실리게 됐다.
1900년 전까지만 해도 매독을 일으키는 병원균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1905년 의학자들은 매독의 원인균으로 스피로헤타(spirochete)과에 속하는 트레포네마 팔리듐균(treponema pallidum)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매독의 이해와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적 약품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수은 증기를 국부에 쐬는 등 수은을 활용한 치료가 대세였다. 그러나 체내로 침투한 수은의 독성으로 인해 매독균은 박멸됐지만 대신 사람이 수은 중독에 걸려 죽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부작용은 있지만 비소를 활용한 살바르산 606호의 개발과 1940년대 효과적인 페니실린 치료제가 나와 오늘날에는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질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500년 이상 괴롭힌 끔찍한 병이 해결된 셈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매독이 다시 유행세를 타고 있다는 보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에서 4,540만 명이 매독에 감염된 상태로 집계되었다. 1990년 한 해 동안 매독으로 인한 사망자는 20만 2,000명이었고 2015년에는 10만 7,000명이 사망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4년 8월까지 매독 감염 환자는 1881명으로 확인됐다. 작년 전체 환자 수보다 4.52배 증가했다. 이중 1기 환자는 679명, 피부 발진이 나타나는 2기 환자는 316명, 매독이 전신으로 퍼져 장기 손상이 일어나는 3기 환자도 39명, 선천성 환자는 9명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대사회에서 매독의 증가 원인으로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한 즉석만남 및 데이트 애플리케이션과 각종 소셜미디어의 일반보급을 지적하고 있다.
매독균은 성관계에 의해 주로 전파되지만 임신한 여성에게서 태아로 전파될 수 있다. 혈액제제를 통해서도 전파된다. 그러나 화장실 사용, 문 손잡이, 수영장, 욕조, 식기 등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

1기 매독의 주요 증상은 통증이 없는 피부궤양이다. 주로 발생하는 곳은 성기 부위나 항문 주위 등이다. 통증이 없는 궤양은 3~6주 정도 지속되며 특별한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호전된다. 그러나 매독에 대한 치료를 시행하지 않으면 2기 매독으로 진행하게 된다.
2기 매독은 피부 발진과 점막의 병적 증상이 특징이다. 3기 또는 후발 매독의 증상은 주로 내부 장기의 손상으로 나타나며 중추신경계, 눈, 심장, 대혈관, 간, 뼈, 관절 등 다양한 장기에 매독균이 침범해 발생한다.
치료는 환자가 매독의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1기, 2기, 그리고 초기 잠복매독의 경우 페니실린 근육주사를 한번 맞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매독은 치료하지 않는 경우 사망률은 8%에서 58% 정도로 남성에서의 사망률이 더 크다. 매독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콘돔을 사용하고 다수의 상대와 성관계를 피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