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이슈추적-비만치료제 혁명] (2)위고비 혁명, 비만치료제의 역사를 열다

2024년 당뇨병 약 개발 중에 탄생한 '기적의 물질'
GLP-1 호르몬제가 뇌에 배부름 느끼게 해 체중 감량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 미국 일라이 릴리가 이어받아

한국헬스경제신문 유재민 기자 | 

 

2024년, 인류의 질병과 의학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혁명이 시작됐다. 누구는 ‘21세기의 페니실린의 발명’이라 말했다. 바로 ‘비만치료제’의 등장이다. 과거 비만 치료가 ‘의지력’의 영역이었다면, 현재는 ‘호르몬 조절’의 영역이 됐다. 그 중심에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제2의 면역항암제’라 불릴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비만치료제는 주사약에서 벗어나 영양제처럼 먹는 시대가 내년에 도래한다. 6회에 걸쳐 비만치료제 혁명을 다룬다. (편집자주)

 

모든 혁명에는 그 시작점이 있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치료제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소장에서 분비하는 호르몬 GLP-1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낮추며, 뇌의 포만 중추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는 이 호르몬의 체내 반감기가 불과 1~2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덴마크의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가 이 숙제를 풀었다. 수십 년의 연구 끝에 개발된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는 GLP-1의 구조를 변형해 반감기를 일주일로 늘린 획기적인 분자였다.

 

이 약은 처음에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Ozempic)’으로 출발했지만 운명이 바뀌었다. 심장약으로 개발한 비아그라가 세상을 뒤흔든 발기부전 치료제가 된 것과 같은 경우다.

 

이 약의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체중 감량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의료진이 약의 목적을 바꾼 것이다. 약 이름도 '위고비(Wegovy)'가 됐다. 약 이름에 대한 해석은 'We Go'와 ''Victory'*를 결합한 형태라는 것이다. 체중감량이라는 목표를 향해 같이 나아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위고비는 2021년 6월 출시되면서 바로 세계적인 공급 대란을 낳았다. 공급 부족을 틈타 미국에서는 컴파운딩 약국들이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 복제 약물을 조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2025년 시장 판도는 역전됐다.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젭바운드’(Zebound)와 ‘마운자로’(Mounjaro)가 1분기 미국 GLP-1 시장의 53%를 점유하며 처음으로 노보 노디스크를 추월했다. 2분기에는 그 비율이 57%로 더욱 벌어졌다. 실사용 데이터와 직접 비교한 임상 시험에서 젭바운드가 위고비보다 더 많은 체중 감량을 유도한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약들은 등장과 동시에 글로벌 제약 시장을 뒤흔들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비만치료제 덕분에 기업 가치가 급등했고, 제약 산업의 중심이 항암제에서 대사질환 치료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GLP-1 처방 확대는 의료 지형 자체를 바꾸고 있다. 수술적 치료인 비만대사 수술의 비중이 2019년 대비 42% 감소하는 동안, 18~39세 성인의 GLP-1 처방 건수는 같은 기간 588% 급증했다. 이는 침습적 수술에서 약물 치료로의 뚜렷한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다.

 

위고비는 체중 감량뿐 아니라 당뇨병이 없는 비만·과체중 환자에서 심근경색·뇌졸중 등 주요 심혈관 사건을 20% 감소시킨다는 임상 연구(SELECT) 결과도 내놓았다. 비만 치료제 최초로 심혈관 위험 감소 적응증을 추가로 승인받았다. 

 

GLP-1 기반 비만치료제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23% 이상이다. 항암제 시장 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수의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의료계는 앞으로 비만 치료제가 ‘21세기 최대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비만치료제 부작용은 없나

 

위고비, 마운자로, 젭바운드로 대별되는 비만치료제는 현재 모두 주사제 형태다. 주사제 형태의 치료제는 뇌에 배부른 신호를 보내고 위장 운동을 늦추는 방식을 사용한다.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 구역질, 구토, 설사 또는 변비가 나타날 수 있다. 음식물이 위에서 배출되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체중이 빠질 때 지방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근육도 함께 소실될 수 있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근감소증이 낙상이나 골절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급격한 체중 감량으로 인해 얼굴의 지방이 빠지면서 피부가 처지고 노안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드물게 췌장염이나 담석증 같은 담낭 관련 질환의 발생 위험이 보고되기도 했다.

 

아직까진 먹는 약이 아니라 주사제이므로 일주일에 한 번 배나 허벅지에 직접 주사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도 있다.

 

비만치료제의 근본은 ‘덜 먹게 만드는 약’이지 ‘지방을 태우는 약’은 아니다. 이 약은 뇌의 호르몬 체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약을 끊으면 억제되었던 식욕 호르몬이 다시 분출되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갈 ‘요요 현상’ 가능성이 크다.

 

2026년 1월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GLP-1 주사제를 중단한 환자들은 일반 식이요법·운동을 중단한 사람보다 4배 빠른 속도로 체중이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요 현상은 현재 개발 막바지인 경구용(목으로 삼키는) 비만치료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만치료제는 처방을 받아야 하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어쨌든 약물은 약물이다. 약물 요법을 고려하기 전에 스스로의 의지로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량을 늘려 체중을 줄이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특히 70대에는 무리한 체중 감량보다 근육량을 유지하면서 체지방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비만치료약보다는 생활 습관 개선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다.

 

하지만 비만이 대사 질환이나 관절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면 의료진의 판단하에 비만치료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