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ㅣ한기봉 기자
2024년, 인류의 질병과 의학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혁명이 시작됐다. 누구는 ‘21세기의 페니실린의 발명’이라 비유했다. 바로 위고비, 마운자로로 대별되는 ‘비만치료제’의 등장이다. 과거 비만 치료가 ‘의지력’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호르몬 조절’의 영역이 됐다. 그 중심에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이라는 호르몬이 존재하고 있다.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제2의 면역항암제’라 불릴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비만치료제는 내년이면 주사약에서 벗어나 영양제처럼 알약으로 먹는 시대가 도래한다. 6회에 걸쳐 비만치료제 혁명을 다룬다. (편집자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비만 상태로 살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비만을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장기 치료가 필요한 만성 질환’으로 공식 인정했다. 비만은 이미 팬데믹인 것이다. 1975년 이후 전 세계 비만 유병률은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잘 먹고 편안하게 살아온 21세기 문명이 동시에 거대한 공중보건 위기를 잉태해 왔음을 말해준다.
세계비만연맹(World Obesity Federation)이 발표한 ‘2025 세계 비만 아틀라스’는 2030년까지 성인 비만 인구가 2010년 대비 115% 이상 증가해 11억 3천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50년에는 전 세계 성인의 절반 이상인 38억 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 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어린이·청소년(5~24세) 역시 3명 중 1명꼴로 과체중이나 비만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만이 일부 고소득 국가만의 문제라는 인식은 이미 낡은 편견이 됐다. 과거 고소득 국가에서 주로 나타났던 비만 문제가 이제는 빠르게 전 세계화되고 있다. 전 세계 비만 인구의 70% 이상이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가난한 저소득 국가는 영양결핍과 비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른바 ‘이중 영양 부담’(double burden of malnutrition)에 직면해 있다.
세계비만연맹에 따르면 미국,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5개국이 전 세계 성인 비만 사례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비만은 제2형 당뇨병·심혈관질환·암 등 비감염성 질환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질병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죽음의 낮은 문턱이다.
비만과 과체중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적 손실은 2035년까지 연간 4조 3,2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WHO 연구가 있다. 전 세계 GDP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적 충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전 세계 의료비 지출의 13%에 해당하는 9,900억 달러가 이미 비만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에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2021년을 기점으로 15조6382억 원을 넘어, 음주(14조6274억 원)와 흡연(11조4206억 원)보다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 환자가 받는 비만대사수술 이외에 비만 예방과 치료는 모두 건강보험 비급여·미용의 영역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비만 관리 정책을 위한 재원이나 법률도 없다.
비만 치료는 식이요법과 운동, 혹은 제한적 효과를 가진 약물에 의존하는 분야였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새로운 시대가 왔다.
'GLP-1'이라는 새로운 계열의 약물은 이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2024년 ‘위고비’를 시작으로 체중을 10~20% 이상 줄일 수 있는 비만치료제가 속속 등장하면서 전 세계 제약사들은 비만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올해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쌍두마차인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글로벌 매출은 각각 358억 달러, 356억 달러로 잠정 예상됐다. 2023년부터 전 세계 매출 부동의 1위 의약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매출액을 넘어설 것이 분명하다.
올해 비만치료제 글로벌 시장 규모는 700억 달러(약 10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에는 한화로 18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에서도 비만치료제가 상륙하면서 한때 매진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작년 10월15일 국내 출시됐다. 올해 6월 말까지 처방 건수는 39만 5천여 건이다. 여성이 72%이고 30대와 40대가 60%였다.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올해 8월 14일 출시된 후 그달에만 6만 건 이상 처방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위고비를 약간 능가하고 있다. 마운자로 2.5mg는 한 달 가격이 28만 원, 5mg는 37만 원 선으로 위고비보다 저렴하다.
보건당국은 전문의약품인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처방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있다. 아무나 처방을 받을 수는 없다.
초기 체질량지수(BMI)가 30kg/㎡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 BMI가 27kg/㎡ 이상 30kg/㎡ 미만이면서 고혈압 등 1개 이상의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는 성인 과체중 환자에게만 처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부 병원에서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환자의 부탁에 따라 처방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식약처는 비만치료제가 미용 목적으로 처방받는 사례가 늘어나자 최근 신중하게 처방하고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식약처는 “비만치료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 후 약사의 조제·복약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온라인 등에서 해외 직구나 개인 간 판매를 통해 유통하거나 구매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 탓에 대다수 비만 인구가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경쟁하듯이 처방을 받고 있다.
비만치료제는 곧 대중화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 미국에서 값을 내린 먹는 비만치료제가 출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만치료제는 어떻게 살을 빼나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비만치료제의 핵심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수용체 작용제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GLP-1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것은 뇌의 포만 중추를 자극해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보내고, 위장의 운동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게 한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이 호르몬의 작용을 모방해 만든 성분으로, 뇌를 속이는 것이다. 환자는 자연스럽게 음식 섭취량이 줄어 체중이 감소하게 된다.
이 약물은 단순히 식욕을 억제하는 기존 다이어트 약과 달리 뇌와 소화기관을 동시에 조절한다는 특징이 있다.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해 식욕을 감소시키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춰 음식이 위에 오래 머물게 한다. 결과적으로 적은 양의 음식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약물이 대사질환 개선 효과도 가진다는 것이다. 실제 임상시험에서는 혈당 개선,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지방간 개선 등 효과가 확인됐다. 비만치료제가 단순한 다이어트 약이 아니라 대사질환 치료제로 평가받는 이유다.
최근에는 GLP-1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호르몬을 동시에 조절하는 차세대 약물도 등장하고 있다.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폴리펩타이드)와 글루카곤까지 자극하는 이중·삼중 작용제로 진화해 체중 감량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