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역사와 의학] <8>의사의 상징 ‘청진기’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한국헬스경제신문 박건 기자 |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구는 청진기(Stethoscope)다. 의사 그림을 그릴 때도 꼭 목에 건 청진기가 등장한다.

 

청진기가 발명되기 전, 의사들은 환자의 가슴이나 배에 직접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직접 청진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환자와의 거리감이 너무 가깝고, 환자가 비만일 경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불편하고 비위생적이었고, 특히 여성 환자에게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소리의 정확성도 의사의 경험에 크게 의존했다.

 

청진기는 당연히 진화했다. 최초의 청진기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원통형 나무 관이었다. 이후 청진기는 더 편리하고 정확한 소리를 듣기 위해 발전을 거듭했다.

 

 

청진기의 탄생은 사실 한 의사의 수줍음과 아이들의 놀이에서 시작되었다.

 

1816년 프랑스의 의사 르네 라에네크(René Laennec)는 젊은 여성 환자를 진료하던 중 민망함을 느꼈다. 그때 그는 동네 아이들이 긴 나무 막대기 양 끝에 귀를 대고 소리를 전달하며 노는 것을 떠올렸다.

 

라에네크는 종이를 돌돌 말아 한쪽은 환자의 가슴에, 다른 한쪽은 자신의 귀에 댔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심장 소리가 귀를 직접 댔을 때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크게 들렸다.

 

그는 자신의 저서 ‘간접 청진법에 관하여’에서 “나는 심장의 박동과 호흡의 소리를 이만큼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스테토스코프’라는 이름도 이때 탄생했다. 그리스어 stethos(가슴) + skopein(보다/관찰하다)가 합친 말이다.

 

1820년대는 나무나 상아로 만든 깔때기 모양의 긴 관인 ‘단청진기’였다. 한쪽 귀로만 청음할 수 있었다. 이어 1851년 아서 리어드가 발명한 양이청진기 시대가 왔다. 금속 튜브와 고무관이 결합해서 양쪽 귀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소리를 증폭하고 장시간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청진기는 의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들어와 청진기는 가슴에 닿는 부분(체스트피스)이 낮은 주파수인 벨(심잡음, 심부전)과 높은 주파수인 다이어프램(호흡음)으로 만들어졌다.

 

1960년대 하버드대 교수 데이비드 리트만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가볍고 정밀한 리트만 청진기를 발명했다. 음향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현대의 청진기는 단순히 소리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똑똑한 진단 기기로 변모하고 있다.

 

전자 청진기는 주변 소음을 제거하고 심장 소리를 최대 40~100배까지 증폭한다. 녹음된 심음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심장 판막 질환이나 부정맥 가능성을 즉석에서 판별하기도 한다.

 

또 스마트폰과 연결하여 환자가 직접 녹음한 심박동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송할 수 있다.

 

청진기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도구가 아니다. 의사의 목에 걸린 청진기는 환자에게 “나는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뢰의 상징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환자의 숨소리를 직접 듣고 공감하는 이 아날로그적인 연결은 의학의 본질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