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오동진 영화평론가
11월이다. 11월은 늘 문학과 영화, 미술과 음악의 주요한 소재가 돼 왔다. 독일 한스 에리히 노삭의 전설적인 소설 『늦어도 11월에는』이야말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나 『헤다 가블러』, 혹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1857년에 쓴 『마담 보바리』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잇는다고 여겨지나, 이 작품의 연보 역시 1955년으로 생각보다 오래된 작품이다.
대기업 사장의 부인인 28살 유부녀 마리안네가 남편의 회사가 제정한 문학상 수상자인 34살 작가 베르톨트를 만나 급격하게 사랑에 빠지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와 함께 애정 도피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라면, 영화는 수없이 많이 다뤄 왔는데 그중 대표 격으로는 물경 60년이 넘은 영화 <페드라>(1962)가 있겠다. 줄스 다신이 만들었고 앤서니 퍼킨스와 멜리나 메르쿠리가 나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렉시스(퍼킨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계모 페드라(메르쿠리)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면서 차를 과속으로 몰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새로운 얘기, 창작한 얘기 같지만 사실 이런 모든 멜로의 설정은 2천 년 전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에서 흘러온 것이다. 금지된 사랑, 그 비극적 이야기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부분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사랑 이야기 중에서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토니 스콧 감독이 만든 빼어난 영화 <리벤지>이다. 여기서 은퇴한 미국인 조종사 코크란(케빈 코스트너)은 조직의 보스 멘데스(앤서니 퀸)와 사는 (너무나) 젊고 아름다운 여인 미레이아(매들린 스토)와 사랑에 빠진다. 조직 보스는 코크란을 살해하라고 지시하고 여자의 얼굴에는 칼질을 하고 부하들로 윤간하게 한 후 창녀촌에 팔아 버린다. 간신히 살아남은 코크란은 피의 복수를 시작한다. 영화에서 코크란과 미레이아가 사랑을 나누는 때는 가을이다. 11월이다. 사람들은 늘 늦어도 11월에는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면 도파민이 생성된다. 도파민은 면역력을 높여 주는 일종의 호르몬이다. 면역력을 높이는 데는 프로폴리스보다 연애가 낫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성 남녀가 연애할 때, 혹은 동성 간에 사랑의 감정이 흐를 때 사람들은 얼굴에 빛이 난다. 감기에도 잘 안 걸린다. 둘이서 아무리 여행을 쏘다니고 육체를 소진해도 그리 큰 병에 걸리지 않는다. 만병의 근원은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본다면 거꾸로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일까. 비극적 사랑 이야기도 사람들에게 연애를 꿈꾸게 한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해 봤으면 하는 동경심을 갖게 한다. 연인과의 스킨십이나 대화는 옥시토신을 증가시켜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자존감을 높인다. 신체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안정된 연애관계는 혈압을 낮추고 심장 질환 위험을 줄인다는 보고가 있다. 애정 표현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억제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어 숙면에 도움이 된다. 최소한 운동을 하게 하고 자기 관리를 하게 한다. 따라서 사랑은 건강이다. 《더 행복한 건강생활》의 독자들도 사랑과 연애의 중요성을 잘 알 것이라고 믿는다.
늦어도 11월에는 봐야 할 우리 영화로는 <만추>가 있다. <만추>는 한국에서 세 번 만들어졌다. 흔히들 김태용 감독이 2011년에 만든,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만추>를 생각하겠지만 원래는 1966년 이만희 감독(배우 이혜영의 아버지)이 만들었으며 1981년 김수용 감독이 리메이크한 바 있다. <만추>를 한자로 쓰면 晩秋이다. 늦은 가을이고 깊은 가을이다. 그래서 이만희, 김수용의 영화에는 낙엽이 한가득 나온다. 남자는 형사에게 쫓기는 도망자이고 여자는 수감 생활 중 모범수로 인정받아 짧은 휴가를 나온 참이다. 두 사람은 기구하고 짧은 사랑을 한다.
두 노감독의 작품과 달리 김태용은 만추의 낙엽 대신 미국 시애틀의 안개로 분위기를 바꿨다. 김태용의 이 영화 역시 애초에는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의 가을과 낙엽을 배경으로(마치 조안 첸 감독,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뉴욕의 가을>처럼) 찍으려 했으나 원래 캐스팅 라인업이었던 장동건과 장쯔이 일정이 맞지 않아 아예 공간과 배우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만추>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은 현빈과 탕웨이의 키스 신이다. 감독 김태용은 이 장면을 정말 공들여 찍었다. 그리고 탕웨이와 결혼을 했다. <만추>는 도파민을 펑펑 쏟게 할 것이다. 사랑 영화를 많이들 보시기 바란다. 연애를 못 할 때는 사랑 영화가 최고이다. 사랑 영화로 울고 웃으시라. 최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