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역사와 의학] ②환각파티에서 시작된 마취제의 발전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건수 기자 |

 

‘인간의 고통을 잠들게 한 의학 혁명’, ‘19세기 의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불리는 마취제. 현대의학에서는 마취제 없는 외과수술을 상상할 수가 없지만, 마취제가 나오기 전까지 환자들은 수술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마취제는 어떻게 발견되고 개발되고 진전되었을까.

 

많은 발견이나 발명이 우연에서 시작되었듯 마취제의 시작은 놀랍게도 ‘환각파티’에서다.

 

1844년 어느 날,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열린 ‘웃음 가스 파티’에 갔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는 특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웃음 가스를 마신 사람이 다리를 다쳐 피를 흘리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는 웃음 가스를 치과 수술 마취제로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다음 날 웃음 가스를 들이마시고, 자신의 사랑니를 뽑아봤다.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웃음가스(Laughing Gas)의 정체는 아산화질소(Nitrous oxide)다. 1775년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최초로 합성했다. 영국의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는 정제된 아산화질소가 기분이 좋아지면서 자극과 통증에 둔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아산화질소를 ‘웃음 가스’라고 이름 짓고 마취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아산화질소는 젊은이들은 파티를 즐기기 위해 환각제로 사용하곤 했다.

 

치과의사 웰스의 발견은 발전되지는 못했지만, 1870년 그가 죽고난 후 미국 치과협회로부터 최초의 마취제 발견으로 인정을 받는다.

 

웰스의 제자 윌리엄 모턴은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Ether)를 마취제로 이용하는 연구를 했다. 그는 1846년 매사추세츠 병원에서 세계 최초로 솜에 묻힌 에테르를 흡입시켜 의식을 잃게 한 뒤 목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한다. 하지만 에테르는 발화점이 낮아 작은 열과 스파크에도 쉽게 폭발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어 외면받았다.

 

1846년 영국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은 에테르보다 부작용은 적고 효과는 우수한 다른 마취제 성분을 찾았는데 바로 클로로폼(Chloroform)이다. 그는 클로로폼으로 무통 분만법까지 개발, 1853년 빅토리아 황후의 왕자 분만 시 성공적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1937년 클로로폼이 간 손상과 심실세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때까지의 마취제는 흡입이나 정맥 주사의 형태였기 때문에 전신 마취만 가능했는데 신체 일부에만 마취가 필요한 코카인 같은 국소 마취가 개발된다. 하지만 코카인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어서 세월이 흐르며 프로카인, 리도카인 등 안전한 국소마취제로 대체됐다.

 

1976년과 1983년에는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이 개발됐다. 미다졸람은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짧은 시간 동안 지속돼 오늘날 내시경 검사나 수술 전의 진정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로포폴은 수술이나 검사 시 마취를 위해 사용되거나,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용되는데 환각 작용이 있어 마약류로 지정됐다. 이밖에도 할로탄, 이소플루란, 세보플루란과 같은 강력하고 안전한 마취제가 개발되었다.

 

마취제는 투입 방법에 따라 흡입 마취제, 정맥주사 마취제, 직장 마취제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통증 조절뿐 아니라 수술 목적에 맞게 환자의 생리적 상태를 유지하거나 조절하는 데까지 발전되었다.

 

마취제가 없던 시절,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술에 취하게 하거나 최면술을 쓰기도 하고, 환자의 경동맥을 압박해 실신시키거나,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어처구니없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환자들은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쇼크로 사망하거나, 수술 도중 쇼크로 사망하기도 했다. 마취제가 개발되기 이전의 수술은 한마디로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현대의 마취제는 단순히 고통을 없애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술 중 환자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의사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