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한건수 기자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2년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영화사에 큰 논란을 남긴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 말론 브란도가 상대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에게 동의 없이 성폭행을 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이 일로 슈나이더는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이때 만약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었다면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매우 낯설지만 할리우드의 촬영 현장에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라는 이름의 전문 인력이 있다.
노출 수위가 높거나 성적 묘사가 많은 영화를 찍을 때 배우의 신체적·정신적 안전을 보호하고 불편함 없이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제작진과 배우 사이에서 안전과 소통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역할은 미투 운동 이후 역할이 부각되었다. 과거 촬영 현장에는 배우가 노출 장면이나 성적인 묘사가 포함된 장면에서 제작진의 부당한 요구를 받거나, 동의 없이 촬영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촉발한 미투 운동은 영화·드라마 업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배우들이 과거에 겪었던 제작자의 성적 착취나 불편했던 경험을 공개하면서 제작사들도 기존 촬영 방식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하고 윤리적이고 존중받는 촬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생긴 직업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다. ‘인티머시’는 ‘내적 친밀감’이라는 의미다.
2016년 영국의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 트리샤 브룩스가 ‘인티머시 디렉터(Intimacy Director)’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이후 2018년 미국 HBO가 영화 및 드라마 촬영 현장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배치를 의무화했고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 등도 점차 도입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촬영에 앞서 감독, 작가와 함께 대본을 분석하고 노출 및 성적 묘사 장면의 수위와 세부 사항 등을 파악한다. 이를 배우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거나 배우의 의견을 전달한다.
촬영장에서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세트장 구성, 카메라 각도, 맨살 보호장비, 배우의 동선 등 여러 측면에서 제작진과 소통하는데 기본적으로 배우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할리우드에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센터장 심재명)이 관심을 갖고 시도하고 있다. 든든은 국내 최초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인 권보람 씨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인 권 씨는 미국 배우방송인노동조합 지정 교육기관에서 6개월 과정을 이수하고 돌아왔다.
든든과 권씨는 국내 영화 현장에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하고 확산하는 데 협력하고 가이드라인 개발, 공동 연구, 인식 개선 캠페인 등 활동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든든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인 지난 2일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불청객이 아닌 동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특별 토크 행사를 열고 이 전문 인력에 대해 소개했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는 일본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니시야마 모모코를 초청해 KAFA 정규과정 40기 졸업 작품인 ‘갈비뼈’ 제작 전반에 참여하도록 했다. 공식 자격증이 있는 코디네이터가 국내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