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12년 끈 500억 원대 담배소송 항소심서도 졌다

건보공단, 2014년 담배 소송 제기
흡연 질환 의료비, 담배 회사에 청구
법원, “공단, 직접 피해자 아냐”

한국헬스경제신문 박건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흡연 피해로 인한 진료비를 배상하라”며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500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심도 패소했다.

 

공단은 즉시 상고 방침을 밝혀 법적 공방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고법 민사6-1부(부장 김제욱)는 15일 건보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건보공단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항소 비용은 공단이 부담하도록 했다. 공단은 2020년 11월 1심에서도 패소했다.

 

건보공단이 2014년 제기한 이 소송은 공공기관이 원고로 참여한 국내 첫 담배 소송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해외에선 담배 회사가 흡연으로 인한 질병에 책임을 지고 정부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한 소송이 여럿 있었으나 국내는 건보공단 소송 전까진 없었다. 앞서 개인이 담배 회사에 소송을 건 사례가 일부 있지만 모두 패소했다.

 

항소심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소송 당사자 자격 △담배의 표시상 결함 여부 △흡연과 암 발병 사이 인과관계 등 주요 쟁점 대부분에서 담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단의 보험 급여 지출은 국민건강보험법이 예정한 바에 따라 징수한 자본금을 집행한 것”이라며 “담배 회사들의 행위와 보험급여 지출 사이에 인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단이 흡연 피해 당사자가 아니고, 공단의 보험 급여 지출은 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한 것일 뿐 담배 회사의 위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담배 회사가 위해성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다는 건보 주장도 “언론 보도, 법적 규제 등을 통해 흡연이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정이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졌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흡연과 질병 사이 개별 인과 관계가 불분명하다는 1심 판단도 유지했다.

 

건보공단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2심 선고 후 법원 앞에서 담배 회사를 교통사고를 내고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간 ‘뺑소니범’에 비유하며 “이번 소송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 등 치료비가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 책임을 묻는 공익소송”이라며 “흡연으로 인한 질병과 사회적 비용의 책임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정 이사장은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 진실이고 고혈압, 당뇨 등은 모두 담배가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병”이라며 “법원이 담배 유해성에 대해 이렇게 유보적인 판단을 한 건 비통하지만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흡연 피해에 대한 담배 회사의 직접적인 책임이 인정되고 있다”며 “해외 소송에서는 필립모리스와 BAT의 거액 배상 책임이 인정됐음에도 이들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건보공단이 손해 배상액으로 내건 533억 원은 흡연과의 인과성이 크다고 본 폐암(소세포암·편평세포암), 후두암(편평세포암) 진단 환자 가운데, ‘30년 이상, 2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흡연’이라는 조건을 충족한 3,465명에게 2003~2012년 지급한 건보 급여비다.

 

건보공단은 그간 항소심에서 담배의 위해성과 제조사의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호흡기내과 전문의 출신인 정기석 이사장이 직접 법원에 출석해 담배의 위해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