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백정현 우리아이들병원장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환절기나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는 계절이 오면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은 늘 비슷한 풍경으로 가득 찬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코를 훌쩍이며, 밤마다 코막힘 때문에 잠을 설치는 아이들이다. “약을 끊은 지 사흘 되었는데 또 콧물이 났어요. 지난번 감기가 다 안 나았을까요? 알레르기 비염은 아닐까요?”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라면 걱정 어린 질문이 더해진다. “혹시 키우는 반려동물이 원인일까요?”
반려동물, 천연 백신이 될 수도
과거에는 반려동물을 알레르기 질환의 ‘위험 요소’로 여겼다. 아토피 피부염, 비염, 천식을 앓는 아이가 있다면 반려동물과 분리할 것을 권고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이전 상식과는 다른 얘기들을 전하고 있고, 이는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을 기반으로 한다. 너무 깨끗하고 소독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면역 체계는 오히려 방향을 잃고 무해한 외부 항원을 공격하면서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한다는 이론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아이의 면역력을 훈련시키는 훌륭한 천연 백신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데니스 오운비(Dennis R Ownby)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생후 1년 이내에 두 마리 이상의 개나 고양이에 노출된 아이들은 7세가 되었을 때 알레르기 질환에 걸릴 확률이 그러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약 50%나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미생물과 내독소들이 아이의 면역 체계가 알레르기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에 정상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발달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진행한 대규모 역학 조사에서는 집에 있는 반려동물의 수가 많을수록 아이들의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 유병률이 계단식으로 낮아진다는 결과를 보여 주기도 한다.
아이의 면역 체계가 완성되어 가는 영유아기 시절, 반려동물의 비듬이나 타액에 노출되는 것은 신체가 해당 항원을 적이 아닌 이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면역 관용(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생체가 반응하지 않는 상태) 형성 과정에 필수적이라는 결과이다.
반려동물은 아이에게 정서적 건강을 주는 존재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이유에는 정서적 측면도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은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공감 능력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반려동물을 쓰다듬고 눈을 맞출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은 스트레스를 줄여 아이가 정서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상태를 유 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정서적 건강은 아이의 신체 면역력과도 직결된다.
건강한 공존을 위한 노력은 필요
물론 알레르기 증상이 심한 아이를 그대로 두자는 뜻은 아니다. 알레르기 검사에서 반려동물 항원에 대한 수치가 높고, 실제 임상 증상이 뚜렷하다면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알레르기의 원인이 단순히 동물의 ‘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소변, 대변, 침, 피부에서 떨어지는 비듬 역시 중요한 알레르겐(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가정에서는 알레르겐이 옷이나 이불은 물론 소파와 커튼 등 집 안 곳곳에 축적되기 쉽다. 따라서 반려동물을 곁에 두기로 결정했다면, 생활 습관 관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약물 치료도 필요
생활 습관 조절만으로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다면,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의 증상과 연령에 따라 국소 스테로이드제, 항히스타민제, 류코트리엔 조절제 등을 사용해 코점막의 염증 반응을 안정시키고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약물 치료는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염증으로부터 아이의 호흡기를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알레르기의 원인 자체를 변화시키는 면역 치료법도 고려할 수 있다.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은 고양이 털이나 집먼지진드기와 같은 소량의 특정 항원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과민 반응이 발생하면서 나타난다. 면역 치료는 이 항원을 극소량부터 점진적으로 투여해, 우리 몸이 이를 위협이 아닌 익숙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