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한건수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KT&G 등을 상대로 흡연에 따른 질병 치료로 쓰인 진료비를 배상하라며 53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갑년(매일 1갑씩 20년 흡연) 또는 30년 이상 흡연한 폐암·후두암 환자 3천465명에게 지급된 진료비를 담배회사에 청구한 것이다.
2020년 있었던 1심 판결에선 흡연과 질병의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단이 패소했다.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재판부는 5월 22일 마지막 변론기일을 열고 선고 기일을 지정할 예정이다.
국립암센터 등 18개 보건의료 관련 단체는 최근 공단의 담배 소송을 적극 지지하고,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18개 단체는 공동 성명에서 “담배 화학 물질들은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에게도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하고 암, 심장병, 뇌졸중,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또 심장마비, 뇌졸중, 말초 혈관 질환 위험을 증가시키고, 간접흡연도 비흡연자의 암과 심혈관 질환 위험을 2~4배 높인다”고 강조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흡연은 폐암과 후두암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선 폐암 발생의 약 85%, 후두암 발생의 약 90%의 원인으로 흡연을 지목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담배에는 700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 그 중 250개 이상이 유해 물질이고, 70개 이상이 발암 물질로 확인됐다. 국제암연구소(IARC)도 흡연을 1군 발암 요인으로 분류한다.

항소심 최종 변론을 앞둔 가운데 국민 10명 중 6명은 폐암 환자의 의료비를 담배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특히 담배회사에 대한 책임 인식은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더 강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이사장 유광하)와 ‘흡연과 폐암, 주목받는 담배소송’ 심포지엄을 열어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온라인 방식의 설문 조사는 3월 27일부터 4월 15일까지 전국 20세 이상 성인 1천209명(비흡연자 757명·흡연자 218명·금연자 23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을 들어본 적 있다는 답변은 비흡연자(39%), 금연자(24.4%), 흡연자(23.4%) 순이었다.
건보공단이 주장하는 담배회사의 의료비 부담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63.7%가 찬성했다.
그룹별 찬성률은 흡연자의 72.5%(일정 부분 부담 45.9%·전적으로 부담 26.6%), 비흡연자의 59.8%(일정 부분 부담 38.8%·전적으로 부담 21%), 금연자의 68%(일정 부분 부담 46.6%·전적으로 부담 21.4%)였다.
전반적으로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담배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현재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비흡연자나 금연자보다 이를 더 강하게 느끼는 셈이다.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위험도에 대한 추가 질문에는 ‘10배 높다’는 응답이 비흡연자의 49.1%, 금연자의 46.6%, 흡연자의 38.5% 순으로 많았다.
담배의 중독성에 대해서는 흡연자의 62.8%, 비흡연자의 70.4%, 금연자의 66.1%가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간접흡연은 비흡연자와 금연자 그룹에서 모두 약 63%가 ‘매우 해롭다’고 봤다.
미국에선 1998년 46개 주 정부가 필립 모리스, R.J.레이놀드, 브라운 앤 윌리엄슨, 로리아 토바코 등 4대 메이저 및 40개 군소 업체들로부터 2천460억 달러를 변상받는 것을 골자로 한 주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는 8천 건 이상의 크고 작은 담배 소송이 진행되었으며, 2015년에는 3대 메이저 담배회사들이 400건이 넘는 흡연 피해 소송을 마무리짓기 위하여 1억달러(1천 억원)를 배상했다.
전문가들은 담배 소송은 단순한 손해배상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 유해 물질을 판매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국민 건강권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임현정 건보공단 법무지원실장은 “그간 담배 소송에서 공단이 패소한 것은 2014년 대법원 판결과 국가 공기업이 담배를 제조·판매한 배경, 사법 시스템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소송은 인과성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엄격히 선정하고, 방대한 증거와 전문가 의견을 확보해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