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역사와 의학] <9>인류, 거대한 죽음의 사슬을 끊다-천연두 종식

한국헬스경제신문 박건 기자 |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선언을 했다.

 

바로 “천연두(Smallpox)는 전 세계에서 완전히 퇴치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인류가 의학적 지식과 국제적 협력을 통해 특정 질병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몰아낸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다. 인류 역사에서 ‘완전한 승리’로 기록된 감염병은 천연두 단 하나다.

 

천연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였다. 기원전 이집트 미라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만큼 오래됐다.

 

천연두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감염자의 약 30%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만 약 3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수다.

 

천연두는 ‘Variola viru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감염병으로, 고열과 전신 발진, 농포가 특징이다. 생존하더라도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남거나 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대륙에서는 파괴적이었다. 16세기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천연두가 유입됐고, 면역이 없던 원주민 인구는 대규모로 사망했다.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 문명과 안데스의 잉카 제국은 천연두로 인한 인구 붕괴 이후 급속히 몰락했다는 분석도 있다.

 

오랜 시간 인류는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가벼운 상처에 묻히는 ‘인두법’을 사용했지만, 이는 감염의 위험이 컸다.

 

천연두 퇴치의 전환점은 1796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의 획기적인 발견이다. 그는 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Cowpox)에 걸린 낙농업자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우두 물질을 소년에게 접종해봤다. 그리고 천연두에 노출시켰지만 발병하지 않았다.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해 면역을 형성하는 ‘우두법’의 개발이다.

 

이 실험은 ‘백신(vaccine)’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vacca(암소)’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이후 모든 예방접종의 상징이 되었다.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강력한 방패를 손에 쥐게 된 순간이다. 백신은 19세기 유럽과 북미로 확산되며 천연두 사망률을 크게 낮췄다.

 

백신 개발 이후에도 천연두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천연두는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여러 지역에서 유행했다. 매년 수백만 명이 감염되고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1967년, WHO는 천연두 박멸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전례 없는 대규모 작전을 개시한다. 전 세계 인구의 80% 이상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격리하고, 그 주변의 모든 접촉자에게 접종하는 ‘포위 접종(Ring Vaccination)’ 방식을 도입해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를 차단했다.

 

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백신 공급과 인력 파견에 협력했다.

 

1977년 소말리아의 청년 알리 마오 마알린(Ali Maow Maalin)이 자연 발생한 천연두의 마지막 환자로 기록되었다. 이후 3년간 추가 발생이 없자, 1980년 WHO는 공식적으로 박멸을 선언했다.

 

현재 천연두 바이러스는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러시아의 국립 바이러스·생명공학 연구센터(VECTOR) 단 두 곳의 고위험 실험실에만 연구 목적으로 보관되어 있다.

 

천연두 퇴치는 단순히 의학적 성과를 넘어, 인류가 하나로 뭉치면 불가능해 보이는 재앙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새로운 팬데믹 시대에도 천연두 퇴치의 역사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다.